스타트업을 다니는 야매 직장인 이야기.
미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신생 브랜드를 출시하는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했다. 설립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는 정말 '신생아'기업이다. 스타트업이 그렇듯, 일을 시작하고 눈 깜짝할 새에 여러 가지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디자이너로 일했던 사람이지만 이 회사에서 나는 MD이자 생산팀이어야 했다. '담당자에게 전달드릴게요.'하고 전화를 끊고 내가 그 담당자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나에게는 선임조차 없었다. 사고가 터져도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었고, 직접 부딪히고 몇 번 깨져야만 겨우 배울 수 있었다.
여러 업무에 치여 순식간에 1년이 넘어가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야매'가 아닐까? 취업 지원서를 넣으려면 나는 MD든 생산팀이든 어디에나 넣을 수 있지만 동시에 나는 어디에도 넣을 수 없다. 하나의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모두 겉핥기식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류 작업지시서를 작성하려면 업계 특수 용어를 사용하여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나는 곁눈질로 배워 아직도 공장과의 미팅에서 기본적인 용어에 대한 설명을 듣기 일쑤다. 이런 내가 경력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취업시장에 뛰어든다면 썩 매력적인 지원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민이 계속되자 1년 차인 친구들에게 전문성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는 나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1,2년 차 직장인들은 자신이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말은 '나는 전문성이 없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야.'였다. 고속 성장을 하는 큰 스타트업에서 전문적인 일을 잘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머리가 띵했다. 큰 회사에 다니거나 선임이 많거나에 상관없이 모두가 전문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연차에서 전문성이란 업무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어진 업무를 통해 키워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성향이나 직무 선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너무 다양한 업무를 다루고 있어 고민이라면 선호도를 매기고 하나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업무 간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업무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 넓은 범위로 자신이 속해있는 시장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대한 전문성을 어필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성에 대한 고민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이직을 하려는 직장인들에게는 공통적인 것이다. 나처럼 선임이 없어 비교군이 없는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되어 있을 수도 있다.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내 직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보다 자신에 대한 고찰 몇 줄이 더 값진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