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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곤지 Sep 09. 2018

퇴사학교를 퇴사하다 #1

※ 찌질주의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매우 우울함)


퇴사학교를 언제
퇴사할 거예요?


취업도 안 해봤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퇴사학교를 시작했냐는 질문과 함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언제 퇴사할 거냐라는 질문이었다. 말장난 같은 저 라임(..)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참 많이 받았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여기가 내 브랜드, 내 회사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손쉽게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이를 낳은 엄마의 마음이랄까?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늘 속으로 생각은 했었다. '그러게- 나는 언제 퇴사학교를 퇴사하나?' 답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었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경험이다 …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행복의 기원> 中 (서은국 저)


사람은 살면서 행복한 기억 몇 가지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기억력의 한계상 인생 전체의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었고, 중요했고, 특별했던 기억 몇 가지가 지난날의 전체를 좌우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창업이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했고, 특별했고,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침이 될 기억이라고 할까. (사실 별다른 경력도 없었기에 내 입으로 내가 '창업'을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인 것 같고, 좋은 팀 멤버들을 만났기에 창업을 하는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방황하던 20대 중반,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감정 기복을 겪었던 취준생 시절. 남들이 하지 않는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은 분명 우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인 기회였던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

 창업이라는 길 위에서 훌륭한 팀원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개척해나가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분명 힘들고 때론 괴로웠던 과정 또한 분명 많았다. 비즈니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힘들긴 했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오히려 내 마음이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지인들의 취업 소식, 원하는 대학엔 못 갔지만 재수할 용기가 없었기에 포기했던 '좋은' 타이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많이 성장하고 싶은데 작은 곳에 있어도 될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상황은 어찌 되었든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사업적인 난제(마케팅/브랜딩/매출..)를 어떻게든 풀고 싶은데, 사회생활 경험도 거의 전무하다 보니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하다못해 명함을 주고받는 일, 비즈니스 이메일 쓰는 법, 미팅하는 법 등등도 글로 배웠다),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혼란스러움과 나는 왜 이렇게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하는 좌절 등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들었던 시기들이 분명 많았다. 하다못해 법인은 세금은 왜 그렇게 많이 내는지, 나라에 신고해야 할 것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이며 소득공제받는 일은 왜 그렇게 힘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리도 복잡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혼자서 척척 해내야 하는 어른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 


이런저런 혼란스러움이 겹치고 겹쳐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나는 뭘 해야 하나, 여기서 난 뭘 하고 있나,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 때문에 마음이 괴롭기도 했었다. 나는 엘리트는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길을 가는 엘리트 친구를 보며 솔직히 말해서, 엄청 부러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차라리 학교처럼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길이 주어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기도 했고.


불광/시청 → 상암을 거쳐 신사 정착. 혼돈의 공간 셋팅


 분명 창업이라는 길에 뛰어들고 초창기 1-2년 동안은 내 인생 가장 혼란기였음이 틀림없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교만한 마음 등등이 뒤섞여 있는 나라는 사람의 바닥을 보았다고 할까. (나도 이렇게 생각한 줄 몰랐는데, 최근 한 독서모임에 가서 이런 말을 툭-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깜짝 놀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참 힘들었구나, 그 힘든 것도 스스로 몰라줬구나(혹은 모른 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감정에 둔한 사람인가 보다.)



 꿈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라는 타이틀답게 #진로에 대한 고민 많은 직장인들이 정말 많다. 진로,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솔직하게 자기 인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진로, 커리어, 인생의 고민은 결구 뿌리가 같을 수밖에 없으니까. 어느 날의 강의 중에 누군가가 질문했다. 솔직히 자기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용기가 없다고. 남들이 잘 따라가고 있는 길을 가고 싶지만, 가기는 싫다고. 이런 우울한 자기 자신이 싫다고.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그냥 인정하면 편해요
문제는 인정 안 하고 싶은
자기 자신이지


 그러게, 생각해보면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도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지만 하기 싫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꾸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그냥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전부 툭-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매일매일 궁금하고 매일매일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천방지축인 것을. 평생 어린아이처럼 늘 호기심 가득하고, 이 넓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즐거움들을 전부 다 경험하고 해보고 싶은 욕심쟁이인 것을. 닭장 같은 틀 속에 갇혀 정해진 정답을 찾아야 하고, 벼락치기로 시험을 치고, 이해 없는 암기만 반복하는 의미 없는 공부가 아니라 진짜 세상에 스스로를 내던져서 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 것을. 매일매일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즐기는 변태 같은(?) 사람인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 맥락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인 것을. 그리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그대로 착실하게 따라가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어하는 튀는 사람인 것을. 목표를 정해서 계획대로 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가며 한 스텝, 한 스텝 밟아가고픈 지극히 이상주의자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 당장 죽더라도 후회 한 톨 남기지 않고 싶은 현재 주의자인 것을.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도움을 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뭐라고, 그런 나를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나를 인정하며 잃은 것도 많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이상한 확신이 생겼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삶의 방식이 어울리는 사람이고,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물었던 why라는 질문,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일해야 할까?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할까? 에 대한 답을 드디어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퇴사학교는 나를 위한 학교이기도 했다. 남보다 뒤처질까 봐 한없이 초조해하면서, 정작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찌질, 그 자체였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을 찾게 해 주고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곳. 이제는 왜 내가 저런 고민에 파묻혀 있었지 싶을 정도로 지질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보니 진짜 자유로워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창업'이라는 과정은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자, 내 인생 가장 다이내믹한 시기이자, 가장 빛났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제대로 된 입사도, 퇴사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퇴사 학교를 20대 중반에 만났던 것은 인생 가운데 큰 행운 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


p.s 사실 이 지질한 글을 오랫동안 저장-상태로 두고 있었다. 혼자만의 일기장처럼 가끔 생각나면 보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공개를 하는 이유는 분명 이런 시기를 겪고 있을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이런 나의 지질하고 약한 모습을 드러낼 용기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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