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는 1분, 충전은 하루 종일? 전기차 단점은 과거의 일
잠들기 전 매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부터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 워치, 무선 청소기, 전동 칫솔 등 충전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고 그 기기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충전하는 동안 기기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충전기에 꽂거나 무선 패드 위에 얹어 놓는 식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편의를 얻고 있죠.
전기차를 충전하는 것도 기본 원리는 이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 충전에는 관대하지 않은 편입니다. 전기차는 스마트폰 충전기처럼 휴대할 수도 없고, 충전하는 데도 오래 걸립니다. 주행 거리도 짧아 장거리 운행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다가올 친환경 모빌리티 시대, 전기차의 단점이라 불리는 배터리와 충전 기술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주유는 1분, 충전은 하루 종일?
전기차 단점은 과거의 일
국내 전기차 충전 시설은 현재 약 7만여 개 정도로 집계됩니다. 2016년 2천대를 갓 넘겼던 전기차 충전기가 5년 새 38배로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전기차 1대당 0.5대 수준으로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열린 2021 KAIDA 오토모티프 포럼에서 실제 충전 인프라 부족,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 시간 등이 전기차 보급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는 전기차 시장의 특성과 소비자 동향을 소개하면서 "성장기 진입을 앞둔 국내 전기차 시장에 충전 인프라 확대와 여러 브랜드의 적극적인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럽 자동차 제작사 협회에서도 "유럽 자동차 업계는 그린딜 계획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구조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전기차 구매 부담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 실생활에서의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습니다. 주차장 곳곳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늘어나고 전기차 충전소를 모바일 앱으로 찾아주는 서비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장거리 주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단 몇 분 만에 채우는 무선 충전, 이동식 충전, 배터리 교체 등의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국내외 배터리 충전 기술
전기차의 약점은 충전 시간입니다. 기름을 넣으면 바로 달릴 수 있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급속 충전소에서 하지 않는 이상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립니다. 충전 케이블을 꽂아 둔 채 자리를 비우는 것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관련 업체에서는 무선 충전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무선 충전 기술은 도로 및 주차면 아래의 충전 송신기와 차량에 탑재한 수신기를 연결해 무선으로 충전하는 기술입니다. 무선 충전 인프라가 설치된 구역에 세워 놓기만 하면 별도의 연결 없이 충전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스마트폰을 충전 도크에 올려 충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 분야에서 앞섰다고 평가받는 업체는 독일 타이어 제조사 콘티넨탈입니다. 콘티넨탈은 전기차가 본격 대중화되기도 전인 2018년 자동 무선 충전 시스템을 공개했습니다. 충전 패드 위에 눈이나 비, 낙엽 등 이물질이 쌓이더라도 배터리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 충전합니다. 이는 ‘자기 위치 시스템’ 기반 마이크로 내비게이션 기술로, 무선 충전의 정확도와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연구 개발을 해온 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달리면서 충전할 수 있는 전기차 도로도 개발 중입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일렉트레온 와이어리스(Electreon Wireless)가 개발 중인 무선 충전 도로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와 같은 원리로 자기 주파수를 사용해 아스팔트 아래 지하에 묻혀 있는 코일에서 자동차 밑부분에 부착된 수신기 패드로 전력을 전달합니다. 최대 1마일 길이의 전기 도로는 EV가 멈출 때나 운행 중일 때 모두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운전자들은 더 이상 차를 멈추고 충전소를 들러 플러그를 꽂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일렉트레온은 이미 유럽에서 전기 버스가 달리며 충전하는 도로를 구축해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미시간 주정부, 디트로이트시, 포드 등 다양한 협력 기관과 함께 약 1.6㎞ 길이의 ‘공공 무선 충전 도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 퀄컴도 전력을 받는 수전 패드를 단 차량이 송전 패드가 설치된 도로를 달리면 배터리가 자동 충전되는 전기차용 무선 충전 시스템(WEVC) ‘퀄컴 헤일로’를 개발했습니다.
전기차 고속 충전 구독 모델을 내놓은 회사도 있습니다. 2017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 설립된 미국 충전 서비스 업체 스파크차지(SparkCharge)입니다. 앱으로 호출하면 스파크차지 차량이 운전자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전기차 충전 서비스 업계의 우버이츠로 불립니다. 1시간 안에 약 70마일의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고속 충전 서비스입니다. 충전 시 고객이 반드시 현장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월간 구독료는 25달러이나, 차량의 모델이나 충전 횟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됩니다. 스파크차지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과 로스앤젤레스, 댈러스에서 서비스 중입니다. 2024년 초까지 10~15개의 새로운 도시에서 앱과 이동식 충전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한다는 계획입니다.
배터리 자체를 새로 교체하는 ‘배터리 교체 방식’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약 3분 만에 완전히 충전한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어 충전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전기차 충전 시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짧은 주행거리 등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처음 차량을 인도할 때 배터리를 포함하지 않아 (배터리 가격을) 뺀 1300만 원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 교체는 중국에서 활발하게 개발 중입니다. 중국 CATL은 지난 2020년 전기차 배터리 교환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미리 충전해 놓은 배터리를 교환해 주는 서비스를 10개 도시에서 제공할 예정입니다. 기존 배터리팩 1개를 3개로 분리해 제공하는 배터리 1개의 에너지 밀도는 1kg당 160Wh로 약 200km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총 3개까지 배터리를 교환할 수 있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분 정도로, 고속으로 충전해도 20분 이상 필요한 충전 방식보다 월등하게 빠릅니다.
국내에서는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고 배터리를 빌려 쓰는 배터리 구독 서비스가 이르면 내년부터 출시될 예정입니다. 전기차는 소비자가 소유하고 배터리는 렌트 회사가 소유해 차량 소유자에게 빌려주는 방식입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허용하면서 여신전문 금융업계는 전기차의 핵심 장치이자 가장 고가인 배터리를 구독하는 서비스의 출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대캐피탈은 이르면 내년부터 구독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배터리 구독 서비스가 출시될 경우 초기 구매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질 전망입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차량 가격의 40%가량을 차지합니다. 구독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배터리 비용이 제외된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한 뒤 대여 비용만 내면 되기 때문에 전기차 구매자는 신차 구매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 그룹이 전기차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전기차 전용 충전소를 열고 지난 2월부터 강남과 수지,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 3개소에서 무선 충전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입니다. 바닥에 설치된 충전 패드 위에 차량을 주차하는 것만으로 충전 가능합니다. 충전 성능은 11kW로 GV60 기준 약 8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현재 제네시스 전기차 운전자에게 공급 중인 유선 홈 충전기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현대차는 현재 설치한 무선 충전기 수를 향후 75개까지 확충해 2023년까지 사업 실효성 검증 및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전동화 전환에 따른 자동차 업계 과제
스마트폰으로 상당히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요즘, 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에서는 충전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얼마나 빨리 충전이 되는지도 스마트폰을 고르거나 교체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 전기차는 충전의 긴장감에서 스마트폰만큼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전기차 운전자는 매일 밤 집에 설치된 충전 시스템을 사용하고 비용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집에 설치된 충전기를 사용하면 충전 속도가 느리고,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항상 차량을 충전시켜 놓아야만 합니다.
아파트 단지에 충전기 개수가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앞으로 전기차 수가 충전기 수에 비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면 대다수 운전자가 밤에 충전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선 충전 연구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아직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배터리 교체 방식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배터리 규격을 통일해야 하는 한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CATL의 배터리 교체 충전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CATL 배터리 교체 규격에 맞는 전기차여야만 합니다. 즉, 자체 충전 규격과 전용 배터리를 사용하는 테슬라, 폭스바겐 등에 CATL의 배터리를 사용하려면 자동차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설계하더라도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충전 인프라 확충은 친환경차 보급의 선결조건입니다. 어느 산업이든 사용자가 편리한 쪽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전기차 충전 역시 유선 무선 이동은 방향성은 확실하고, 충전 시간은 짧아지면서 주행 길이가 늘어나야 국민들이 친환경차를 원활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발전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력, 전기차 판매량 증가 등 여러 요인으로 전기차 충전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미국 스파크차지 조시 아비브 CEO는 “대부분 도시의 모든 블록에 피자 가게가 있지만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어대시나 우버이츠를 사용한다”며 “사람들은 앞으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편리한 서비스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기차 충전이 휘발유를 채우는 것처럼 빠르고 편리해진다면 전기차 구매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고 더 많이, 또 더 빨리 전기차 구매가 확산될 것입니다. 충분한 인프라를 마련하고 다양한 방식의 충전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2년 8월 24일 현대캐피탈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