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보통의 인간을 위한 AI 안내서_교육 혁명일까 인류 위기일까
얼마 전 대학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강의 뒤 교수님들이 주셨던 질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음 두 가지였습니다.
"우리 이제 다 늙었는데, AI를 배워야 하나요?"
"학생들이 AI를 써서 숙제를 하면 어떡하죠?"
이 질문들을 듣고 문득 10여 년 전, 대학 시절 리포트를 제출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교수님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셨거든요.
"너네, 인터넷 베껴서 내면 다 F야!"
어쩌죠? 이미 많은 학생들은 과제에 챗GPT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국내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천국이 대학생 5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I를 학업에 활용했다는 응답은 25%(136명)으로 나타났고요.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32.4%가 챗GPT를 학업에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최근에는 유명 대학 논술 시험에서 일부 학생들이 챗GPT를 활용해 시험을 봤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입니다.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릴 수 있다"
과제와 시험에서 합의되지 않은 AI 사용은,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부정행위의 문제를 넘어 학생들의 사고력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조슈아 윌슨 델러웨이 대 교육학과 부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챗GPT는 과정을 생략하고 완성품으로 점프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만 그럴까요? AI는 교사들의 업무 방식도 바꾸고 있습니다. 수업 지도안 작성이나 문제 출제뿐만 아니라 시험지 채점, 평가 기준 설계, 예제 만들기 등에도 AI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 교사에 몰리는 과중된 업무 부담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반면,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교육 격차 커질 것"
경제력 차이가 AI를 사용하는 교육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미 많은 AI가 유료화되었죠. 아직 무료 버전이 있다지만 챗GPT만 해도 유료인 4.0 버전과 무료인 3.5 버전의 응답 수준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성형 AI가 쏟아지는데, 유료 구독자와 무료 사용자 차이에는 출력물부터 AI 활용 방식, 확장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교육적 격차로 이어져 또 다른 빈부차이를 낳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OpenAI의 새로운 모델 제품군인 o1 시리즈(o1-preview 및 o1-mini)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o1 시리즈의 특징은 '추론'입니다. 추론 AI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 같은 글쟁이가, o1을 썼을 때는 "이게 뭐가 다른 거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해진 것 같은데..' 의심이 들기도 했고요.
o1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따로 다룰 텐데요, 여기서는 단순히 돈의 한계를 넘어 지식과 환경, 활용력의 차이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삶의 차이를 낳을 것이란 말씀 정도만 드릴게요.
아직 chatgpt조차도 안 써본 사람들도 많고, 쓴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AI를 챗봇 형태로 쓰고 있는 가운데, OpenAI o1 시리즈는 인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전망입니다. 어쩌면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 새로운 종류의 AI에 대한 사용자에 대한 가치 제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론'할 수 있는 AI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추론이라는 건, 보통 과학과 수학을 위한 것이고 이 분야에 있지 않은 일반이 에게는 그다지 일상에 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OpenAI와 MS, 테슬라,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은 추론 AI를 활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계속 개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분야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이겠죠. 그 목표는 아이언맨에 나오는 JARVIS일수도, 그다음 AGI(범용 AI)를 만드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렵죠? 다음에 풀어볼게요. :) 모쪼록 특정 문제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추론할 수 있는 AI를 어디에 적용할지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AI는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엄연한 현실입니다. AI가 우리 삶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20여 년 전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말이죠. 그리고 어차피 오는 흐름이라면, 어떻게든 나쁜 건 막고 좋은 쪽으로 활용해 보도록 해야 하는 게 현재 어른들의 역할이겠죠.
그렇다면 AI를 교육에 활용하면 가장 좋은 점은 뭘까요? 학습의 결과물보다는 과정 자체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포스터나 비디오를 만드는 과제를 할 때, 최종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죠.
결국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마치 계산기가 수학적 사고를 대체하지 않듯이, AI 역시 인간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비판적 사고력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계산기가 처음 나왔을 때
수학 교사들이 느꼈을 공포를 상상해 보세요"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AI를 재빨리 현장에 도입해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에 활용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The Spokesman-Review라는 미국 워싱턴주 지역지에 실린 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를 봤는데요, 한 초등학교에서 학습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는 스티브 슈라이너(Steve Schreiner)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AI는 예를 들어, 물건을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입니다. 산업 혁명이 물리적 제품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지식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다듬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즉, 사람들이 오랜 훈련을 통해 습득한 글쓰기, 이미지 제작, 의사소통 등의 능력을 AI에 맡길 수 있게 된 거죠. 다만, 지난 10개월 동안 일어난 변화는 그전 10년을 뛰어넘는 것 같아요. 정말 기하급수적인 변화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그는 AI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기의 등장에 비유했는데요, "계산기가 처음 나왔을 때 수학 교사들이 느꼈을 공포를 상상해 보세요. 정말 무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무능해졌나요? 계산기에 일자리를 빼앗겼나요? 하지만 결국 수학에서는 단순 계산 능력보다 학생들의 사고력이 더 중요해졌죠."
AI는 제대로 준비만 갖춘다면 이전 교육에선 없던 기회도 제공할 수 있는데요, 개인화된 학습 경험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학생 개개인에게 과외 선생님이 붙은 것처럼, AI는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 맞춤형 학습 커리큘럼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물론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AI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교사들은 AI 기술을,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고 있습니다.
단순히 AI가 제공한 답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즉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했는지 분석한다는 것이죠. 결국 학생들은 정답이 맞고 틀리냐가 아니라 AI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만의 질문을 알아야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센트럴 밸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10, 11학년 영어,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 레슬리 헤퍼넌는 수업에서 AI를 활용해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보완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proplexity.ai를 사용해 대서양 혁명에 대한 넷플릭스 TV 쇼 기획안의 주제가를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이때 평가하는 건, TV쇼 기획안의 주제가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정말 주제가를 쓰는 법을 알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건 수업의 핵심이 아니니까요.
"AI가 학습을 강화하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도구라는 걸 알려줍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AI를 사용해 사고력을 높일 수 있을까, 그게 핵심이죠."
같은 학군의 고등학교에서 AP 미국사와 유럽사를 가르치는 캐서린 테스키 교사도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데요, 이는 "그저 교과서를 읽고 달달 암기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니다.
완성된 프로젝트들은 마치 진짜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보입니다. 학생들은 선택한 역사적 사건을 담은 쇼의 제목, 캐스팅, 4개의 에피소드 줄거리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 AI를 사용해 쇼의 타이틀 카드와 스틸 컷, 심지어 주제가까지 만들어냈죠. 학생들은 AI가 만든 노래를 꼼꼼히 검토하고 편집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제, 즉 혁명적인 역사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고 AI가 생성한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면서 AI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실제 이 수업을 들은 3학년 학생들은 "노래가 귀에 잘 들어와서 정보를 기억하기 쉬웠다", "AI가 만든 이미지를 프로젝트에 연결하는 게 좋았다"면서 사건이 발생한 시대부터 원인과 결과를 기억하는 데 도움되는 신나고 재밌는 학습 방법이라고 답했습니다.
"AP 수업에서 기억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5월 시험에서만 5세기에 걸친 유럽 역사를 떠올려야 하니까요.
교사들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기억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창의적 방법을 시도해 왔습니다.
포스터 만들기, 보드게임 디자인, 연극 대본 쓰기 등이 그 예죠"
테스키 교사는 이런 프로젝트의 가치는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항상 기억력을 자극하고 내용과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할 수 있게 됐다면서요.
"학생들의 호기심이,
학습의 한계이자 가능성입니다"
앞으로 학생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 AI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맛있는 요리의 레시피를 익히듯 AI를 배워야 합니다.
AI를 내 업무나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냥 키보드 몇 번 두들겨 검색하고 '복사-붙여 넣기' 하던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어찌어찌 들키지 않았을진 모르나, 같은 인터넷 정보도 비판적으로 분석해 내 것으로 만들어 낸 학생의 진가는 10년, 20년 뒤에 나타납니다. 어떤 식으로든 요.
무엇보다 AI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AI가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불평등에 대비해야 합니다.
유료 AI 서비스와 무료 서비스의 품질 차이, 기술 접근성의 격차 등은 새로운 교육 격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 초기에 겪었던 '디지털 격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AI 활용 격차는 과거 디지털 격차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니까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AI를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을 교육에 성공적으로 통합했듯이, AI 역시 우리 교육의 새로운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AI는 이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해야 합니다.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는 균형잡힌 접근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AI는 교육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AI가 어떻게 교육을 변화시킬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 변화에 적응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참고 기사: 챗GPT 시대, 학생들의 생각을 멈추게 하다(미디어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