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선택이라 부를 수 있는 선택에 대하여

by bittersweet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일.

선택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여러개의 선지가 공평하게 주어지는가?'

'선택지 중에 내가 정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일까?'

'내가 내린 선택이 온전히 나만의 결정인가?'


수많은 꼬리 질문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십여년 넘게 해온 내 직업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부모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 믿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았던 때도 있었으나, 그것을 실현할 수 없는 환경인가를 곱씹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원하지 않는 것의 범주로 옮겨졌는지, 후순위 선택지가 되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온전히 선택하고 있을까?

여럿 가운데서 진정 원하는 것을 고르고 있는가?

고를 수 있는 선지가 없어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당하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하는 선택에 대해 생각한다.

열일곱 남짓한 나이에 평생의 진로를 고르고, 대학을 고른다.

대학의 입학 사정관이 진로에 대한 확신을 인정해줄 수 있도록 과목을 고른다.

너희가 선택했으니 책임이 있지 않겠냐고 말해야 할 때마다 그럴 자격이 있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무작정 선택하라고 해도 되는가? 선택했으니 네 몫이다 하고 던져 두어도 되는가?

내가 선택을 하는 것도, 어린 아이들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최선의 답을 고르기 위해 고민한다.

몇 개 남지 않은 선지 중 가장 적합한 답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쏟고 마음을 쏟는다.

마음을 쏟고 시간을 쓰다 잊어버린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마음이 끌리는 곳이 어디인지 말이다.


선택 아닌 선택 뒤에 수많은 책임들이 산적해있다.

'선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남은 책임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어른이지.'하는 마음이

오늘도 무겁게 어깨를 누른다.


그래도 또 희망을 품어본다. 다음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다음 선택은 그저 직관이 이끄는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최선답을 고르지 않아도, 늘 애쓰지 않아도,

이번 선택이 실패해도 다음이 있을 것이라 툭툭 털어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