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고
결과가 있다면 응당 원인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생태계에서 가장 열등한 종이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무기였을 것이다.
왜?로 시작된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자체가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었겠지.
조금 더 근원으로 회귀해 하나의 장면을 그려본다면,
한 인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갈등이라는 경험을 한 시점,
그러니까 뭔가 불편해 으앵하고 울음이 이어지던 순간
최초의 대상이었던 엄마로부터 들었던 최초의 말이 바로
도대체 왜 그러는데?! 였을 것이며,
이는 한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했을 것이다. 풋.
그러니까, 왜는 인간 이성의 시작점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서 인간은 평생 뭐가 됐든 그것에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것도 풋.
엉뚱한 가설을 제쳐두고라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서, 행동에서 혹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이유를 찾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삶에서 거절을 당하거나 실패를 거듭할 때
혹은 의도와 다르게 오해가 생기거나 상황이 미친 듯이 변덕을 부릴 때
<왜의 전령>이 강하게 임하게 된다.
아니, 왜...? 내가 뭐가 어때서...? 자기애파부터
가만있어보자... 왜 이렇게 나왔지..? 결과에 영향을 미친 변수는 뭐가 있었지...? 분석파나
굳이 왜..? 저의가 뭐지..? 의심파를 지나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혹은 내가 뭔가 잘못했나..? 죄책감파까지
혹은 모든 패턴이 혼재되어 돌아가면서 우리의 뇌를 끊임없이 혹사시키는 것은
바로 <왜의 전령>이 지배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가 있어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정리가 되고
정리가 되어야 해소가 되고
해소가 되어야 다음 스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냥.. 쫌...
이유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그 사람이 이유 없이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열심히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실패했을 수도 있고
딱히 의도가 있거나 저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몸에 밴 그 사람의 다정함일 수도 있으며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냥 이유가 없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 심플한 게 없는 것 같다.
즉,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세상은 훨씬 더 단순해지고 삶은 훨씬 더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유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나와 상대를 들볶지 않아도 된다는 진짜 이유가 생기는 것이며
결국 이너피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너무 강박적으로 이유를 찾지 말자.
(이 말은 가장 먼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토닥토닥..)
우리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이유없는 사랑, 이유없는 도움, 이유없는 이해, 이유없는 다정함처럼 "이유없는" 것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없이 행해지는 것들이
우리를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넋두리 : 지난주 연재일인 월요일을 지키지 못했다. 이유는... (수십 가지를 댈 수 있지만) 없다... 무슨 의도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보는 분들은 짐작하려 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에게도 이유 없는 불발행이 있을 수 있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