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 존

by 쓱쓱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홈플레이트 위, 타자의 어깨와 무릎 사이.

공이 그 안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 벗어나면 볼.

규칙은 단순하다.

심판은 손을 들어 올리거나, 그대로 둔다.

판정은 짧고 분명하다.


그런데 삶의 스트라이크 존은 그렇게 또렷하지 않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공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말, 예상치 못한 일정, 계획을 비껴가는 결과, 관계의 어긋남.

어떤 것은 무난히 받아친다.

그 정도쯤이야,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은 유난히 버겁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말 한마디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평소라면 감당했을 일도 갑자기 무너지듯 힘들어진다.


아마도 그때, 공은 우리의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다.


사람이 힘든 이유는 꼭 일이 많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감정의 밀도가 높아서도, 관계가 복잡해서도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자신의 존을 넘어설 때, 우리는 견디기 어려워진다.

견딘다는 건 결국, 나의 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까지일까.

그 경계는 언제 그어졌을까.


어떤 사람은 작은 비난에도 쉽게 무너진다.

어떤 사람은 큰 실패 앞에서도 담담하다.

차이는 재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각자가 가진 존의 넓이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상처받으며 조금씩 넓혀왔고,

누군가는 보호받으며 비교적 좁은 존 안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존이 고정된 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트라이크 존은 훈련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에는 무섭게 느껴졌던 공도 여러 번 마주하다 보면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한때는 감당할 수 없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정도였나” 하고 말하게 된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존을 넓혀왔다.

실패를 겪고,

관계가 어긋나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존의 경계를 조금씩 밀어낸 셈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치고, 상처가 쌓이고, 회복할 틈 없이 달려온 사람은 존이 점점 좁아진다.

예전에는 괜찮았던 일들이 더 이상 괜찮지 않다.

사소한 말에도 예민해지고,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이미 존이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인정이다.


지금 내 스트라이크 존이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나를 넘어서게 하는지 아는 일.


우리는 종종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나는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밤마다 잠을 설친다.


혹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하며 더 넓어질 가능성을 미리 닫아버린다.

하지만 존은 선언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경험과 회복을 통해 조금씩 조정된다.


삶의 항상성,

그러니까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힘은 어쩌면 이 존의 넓이와 함께 탄력에 달려 있는 듯하다.

크게 흔들려도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회복하는 법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넘쳤던 공을 다시 안으로 들여오는 방법,

잠시 물러섰다가 다시 타석에 서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견딘다는 것은 무조건 버티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존을 넓히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고,
때로는 존을 지키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일이다.


나는 우리가 모두 각자의 타석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쉽게 배트를 휘두르고,

어떤 날은 공을 바라보기만 한다.


중요한 건 모든 공을 쳐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을 알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오늘보다 내일의 존을 넓히려는 마음.
어제는 버거웠던 말을 오늘은 견뎌보고,

어제는 두려웠던 선택을 오늘은 시도해 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스트라이크 존은 단지 판정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까지 자신을 믿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선이다.


그 선은 흔들리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을 조금씩 밀어내며

또 그렇게 확장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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