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만큼 철저하게 혼자인 것이 있을까.
수십억의 사람들이 이 지구 위에 살고 있고,
그 수십억이 각자의 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아무리 유사한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놓아도,
그 고통은 끝내 같아지지 않는다.
고통은 언제나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완전히, 다른 누구도 대신 느껴줄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같은 사람이 세상에 둘일 수 없듯이,
같은 고통도 세상에 둘일 수 없다.
인간은 각자 개별자이고, 고통도 그 개별자의 것이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어서 오히려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자꾸 되짚고 싶어진다.
당연한 것들 속에 가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이 숨어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나는 네 마음을 알아"라고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나.
따뜻했는가, 아니면 어딘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는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완전하지 않다는 감각.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그 말이 거짓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구조적으로,
그 문장은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불가능한 일을 계속한다.
이해받으려 하고, 이해하려 한다.
아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받는 일이 완전히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본능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일까.
왜 우리는 그토록 불가능한 일에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는 걸까.
아마도, 고통이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의 내용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의 고통은 상실에서 오고,
어떤 사람의 고통은 배신에서 온다.
어떤 고통은 오래 곪아서 오고,
어떤 고통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온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그것을 느끼는 그 순간의 감각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아무도 이것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감각.
내가 지금 이 안에 혼자 있다는 감각.
그 감각만큼은, 이상하게도, 거의 모든 사람이 공유한다.
고통의 내용은 개별적이지만,
고통으로 인한 외로움은 보편적이다.
나는 이 아이러니가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려 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이해할 수 없음 앞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 모두 안다.
그 외로움의 질감을.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깊은지를.
그래서 우리는 다가가는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해할 수 없음의 곁에 앉아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고통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당신도 이런 외로움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일.
나도 그 안에 있어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전혀 모르지도 않는다고.
그러니 지금 당장 혼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동행에 가깝다.
고통은 언제나 혼자다.
그러나 그 혼자임을 아는 사람들이,
서로의 혼자임 곁에 잠시 머무는 일.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를 이해하려 드는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해도,
그 고통이 완전히 혼자가 되지 않도록.
이해가 아닌 방식으로,
그럼에도 가장 깊은 방식으로, 곁에 있는 일.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멈출 수가 없다.
고통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