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니까 어질러둬요

by 연오

나는 자취 13년차의 베테랑 자취생이다.
처음 집을 나와 구한 자취집은 지은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다세대 주택의 원룸이었는데, 창문도 깨져있고 화장실엔 세면대가 없었다. 순전히 그 때 가진 예산대비 넓어서 택했다.


내 자취집을 보고 갔던 날 엄마는 마음이 심란해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에겐 13년 째 내가 창문깨진 원룸에 사는 불쌍한 자취생이다.


원룸에 살 때 엄마는 내 집에 올때마다 한 가득 짐을 가지고 왔다.
밑반찬부터, 수세미, 빨래망 같은 살림살이와, 내 집을 청소할 때 갈아입을 여벌 옷 같은 것들.
당연스레 엄마 손을 타다가 조금은 철이 든 어느 날 엄마가 기껏 놀러와서 내 집안일만 하다 가시는 것이 싫어졌다. (미안했다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어느 날인가는 엄마가 오기 전날 큰 맘먹고 온 집안을 싹 다 치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투복(!)까지 챙겨온 엄마는, 잘 정리 된 집을 여기저기 열어보고 들춰보고 나서 뭔가 묘한 표정이다.


“이제 혼자서도 잘하네”


뎅-하고 머리가 울렸다. 이제 늙어진 엄마가 나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몇 가지를 남겨놔야했다.

그 다음부터는 엄마가 올 때 ‘적당한 양’의 집안일- 예를들면 약간의 설거지 같은 것들을 남겨놓는다.
내 기분 탓인지 엄마는 더 생기있어 보였다.


나는 잘 먹고 산다. 다른 의미가 아니라 정말 글자 그대로 잘 먹고 다닌다. 떼 돈을 벌진 않는다만 가정주부인 엄마보다 잘 버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나보다 벌이가 없는 엄마의 가장 걱정은 아마도 ‘불쌍한 자취생’이 잘 먹고 다닐지-인 것 같다. (아니 그게 확실하다)


본가에 방문하면 끼니 단위로 짜여진 엄마의 ‘공급 계획’을 따라야 한다. 어느 긴 연휴인가에는 엄마가 벽에 붙어있는 달력을 보며 한참을 서계시길래 거기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응, 날짜별로 너한테 뭘 해줘야하나 계획짜고 있어. 오호호” 하시더라. 사실 하루만 있다 얼른 갈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어릴 때 엄마는 절대자였다. 그리고 지금에 보는 엄마는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세월에 따라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다른 존재가 되어 간다. 엄마에게는 이제 더 이상 낡은 원룸이 아닌 괜찮은 보금자리에 사는, 본인보다 돈 잘 버는 내가 여전히 혼자 살아 불쌍한 자취생인 것 같다.


쓰다보니…..사실 “엄마 밥” 못 먹고 다니는 불쌍한 자취생은 맞는 것 같기도 하네. 다음 번 방문에는 손 되게 많이 가는 잡채 해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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