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테옹에서의 첫걸음

한국인 유학생이 프랑스 공공기관 직원이 되던 날

by 연B

팡테옹은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처럼 파리 라틴 지구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곳인 생 쥬느비에브 언덕에 있다. 라틴 지구는 중세 시대부터 학생들이 라틴어로 대화를 하던 공간(라틴 지구 quartier Latin에서 라틴 Latin은 라틴어를 의미한다)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1253년 소르본 대학교가 생긴 이후로, 라틴 지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유들이 태어나는 곳이 되었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길을 건너면 프랑스 최고 지성들이 연구와 강의를 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도 여기서 죽기 전까지 14년 동안 거의 매년 강의를 했다. 소르본 대학과 함께 역시 뛰어난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유명 고등학교는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 미셸 푸코가 다녔던 앙리 4세 고등학교도 팡테옹을 바라보고 있으며 팡테옹의 바로 옆면에는 생 쥬느비에브 도서관이 있어 시험 기간에는 밤 10시까지 열리는 이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있기도 하다.


팡테옹의 뒤편에 울름 가 45번지에 있는 그랑제콜,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에서는 미셸 푸코와 사르트르, 보부아르가 철학을 배웠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청강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멀리서도 팡테옹의 돔이 보인다. 매일 위대한 사상가들이 잠든 곳을 떠올리며 공부를 하면, 사유의 크기도 비슷해지지 않을까는 생각과 함께 늘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부러워지곤 했다. 도서관에서, 라틴 지구의 거리에서 대화하는 학생들은 생 쥬느비에브 언덕 꼭대기에서 어디에 있든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팡테옹에 사후에도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팡테옹을 바깥에서 바라보던 파리의 한 유학생의 관점이었다. 여기에 기념되는 사람은 다들 사후에도 위대한 인물, 영웅으로 남는 사람들이기에 아직은 살아있는 내가 팡테옹에 자주 갈 일은 없어 보였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한국에서 알았고 현재에도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는 볼테르의 사상은 프랑스 대학교 언어철학 수업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사유를 공부하는 일과 현실에서 그들 곁에서 늘 함께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데카르트와 볼테르의 동물과 인간의 언어에 대한 대립을 공부하던 그다음 해에, 나는 볼테르의 동상을 매번 바라보게 되고 그를 기념하는 무덤을 오가는 일을 맡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팡테옹에서 일하게 된 나에게, 대학교의 심리 상담 선생님은 공부도 파리에서 하고, 직장도 파리의 중심가인 5구, 라틴지구에서 얻었으니 이제 진짜 파리지앙이 되었다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팡테옹은 프랑스의 지성들만이 빛나는 공간만이 아니다. 신전처럼 생긴 팡테옹의 정면에는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고 적혀있다. <위대한 인간에게 조국은 감사한다>. 국가가 감사하는 인물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국립현충원 같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한국과는 사뭇 다르게, 위인들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프랑스의 팡테옹이라는 공간은 어떤 사람들의 삶과 가치에 대해 감사하는 곳일까? 한국인이면서 프랑스 위인들의 곁에서 일을 하게 된 나는 단순히 내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는 기회에 기뻐할 뿐 아니라 프랑스의 면모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2025년 3월 말, 2월 동안 두 번의 긴 면접(각각 1시간씩 걸렸다)을 통과한 이후에 드디어 팡테옹에서 첫날을 시작하게 되었다. 팡테옹의 안내 및 보안요원으로서 첫 번째 면접은 팡테옹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들을 받았다. 프랑스어로 예상 질문들을 만들어 많이 대비했다. 팡테옹을 소개하기 위해 팡테옹의 역사와 주요한 인물들, 팡테옹의 가치를 프랑스어로 연습했다. 하지만 소화기인 extincteur라는 단어를 몰라서 손으로 소화기 뚜껑을 열고 화재를 진압하는 제스처로 답변을 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을 담당했던 직원들이 내가 너무 긴장하지 않게 여유 있게 대화를 이끌어주어서 1시간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지나갔다.


두 번째 면접에서는 팡테옹의 행정책임자(directrice와)의 면담이 잡혀있었다. 이번에는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면접이라서 또한 다양한 상황들을 설정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상해 갔는데, 영어 질문 하나를 답변하고 나서 바로 끝났다. 이후에는 계약서에 적힌 사항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 가끔 통역사로 일했던 내 이력을 보면서 통역사와 팡테옹 직원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당연히 학업과 병행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팡테옹 직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한 달 뒤에 드디어 출근하기 위해 생 쥬느비에브 언덕을 오르게 되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점점 더 가까워 보이는 팡테옹의 돔과 푸른 하늘이 그렇게 선명하게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아침 나는 다른 두 명의 프랑스인과 함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볼테르와 루소의 무덤이 묻혀있는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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