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학과를 온 이유는 사유를 깊게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던진 질문에 맞게 답할 수 있는 게 목표였다. 체계적인 사유와 논증으로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아직 갈 길은 한참 멀지만 내가 연구하려는 주제는 '환경'(environnement, 프랑스어로는 milieu)이다. 생명에 대한 철학을 중심으로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의사이자 철학자인 조르쥬 캉길렘(Georges Canguilhem, 1904-1995)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상과 병리에 대한 그의 사유가 우울증에 걸린 나를 다르게 인식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병을 가진 '내'가 과연 가치 있는 사람일까?
캉길렘은 인간의 인식이 인간과 환경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캉길렘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조차도 바꿀 수 있는 역동적이며 능동적인 주체이다. 처음에는 환경이 생명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듯 하지만, 생명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생명체 일반이 그러하다면 인간이, 그리고 '나'라는 개체도 환경에 적응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명체의 소화 과정을 단순한 물리 화학의 방정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지만 이것이 생명체의 소화 과정에 대한 전적인 지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소화 기능의 화학적 변화의 일부분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소화 과정을 연구하려면 본질적으로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에서 하는 선택의 특이성(다른 음식물이 아니라 왜 특정한 음식물만 섭취하는지)의 의미를 따져봐야 한다. 왜 판다는 다른 다양한 식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를 통해서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일까? 생명체인 우리는 자연적으로 어떠한 것을 인식하고 있다.
생명체가 있는 곳에는 앎이, 정보가 존재한다. 생명체는 환경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따라서 자극을 선별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체마다 자신에게 고유한 환경이 존재한다. 캉길렘이 즐겨 인용하는 윅스퀼(Uexküll)은 일반적인 환경과 어떤 유기체에게 고유한 환경(Umwelt)을 구분한다. 이 고유한 행동의 환경은 "생명체에게 신호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 자극들의 총체"이다. 나에게 도서관이라는 환경은 철학 책들이 가득한 곳이다. 내게 읽어야 할 책들이라는 신호로서 의미 있는 자극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많은 철학책들 중에 나라는 주체가 자극을 선별하여 특정한 캉길렘의 책을 집어 들 것이다. 환경도 역시 생명체처럼 유동적으로 그들과 상호작용한다. 개체들이 스스로 자신이 나아가는 행동의 방향을 정하도록 자극한다. 프랑스 대학 도서관에는 캉길렘의 저작과 그에 대한 연구저서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세계에서 캉길렘의 책만을 지각하고 이를 경험한다. 나의 관심은 이런 식으로 내 환경을 내 방식대로 질서 짓고 있다.
왜 특별한 것을 선호하고 배제하는 '나', 이러한 개체성이 드러날까? 캉길렘은 생명체가 환경에 대한 규범(선호와 배제의 기준)을 갖추는 것, 규범성(normativité)을 지니는 것이 생명의 본질적 특성이라 말한다. 특정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규범을 창조하는 생명의 힘은 하지만 가끔씩 자신이 목표로 하는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적절한 대응의 규범을 세우지 못한 탓인데, 캉길렘은 이 상태가 질병에 걸린 상태라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은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는 생명이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캉길렘은 건강 개념이 의학의 이상적인 지향이며 늘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정의되어 있지만, 이를 명확히 정확히 정량화한 개념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건강은 질병의 부재로서만 정의될 뿐이다. 심지어 누구나 질병에 걸릴 위험을 지닌 것, 병리적 상태에 빠지는 것이 생명이다. 생명체가 아니라면 병에 걸릴 수 없다. 건강은 그저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다. 환경이라는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열려있어야만 자신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생명체는 그 자체로 정상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외부와의 관계만을 정상이나 비정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질병은 다른 조건에서 다른 규범을 세우고 생명이 살아가려는 시도인 규범화 능력이 일시적으로 좌절된 상태일 뿐이다.
생명체인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관계를, 새로운 규범을 수립하여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독특한 자신을 구성할 수 있다. 나의 실패는 일시적일 뿐이며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생명체인 인간은 규범을 세우고 다시 바꾸는 중이다. 생명이 있는 한 누구나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