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세나아빠가 보였다. 그는 벤치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다. 내가 정오쯤 집을 나설 때 그를 보았으니까 적어도 4시간은 저기서 쭉 성경을 읽고 있었던 듯 했다. 가까워지는 내 발걸음소리에 세나아빠도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맞추었다. 그는 내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보고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해원어머니. 장 보고 오시는 길인가 봅니다.”
나는 몸을 숙여 인사했다.
“참, 해원아버지한테 들으셨을는지 모르겠는데 내일 새벽에 저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아, 실은 제가 두 달전에 차를 팔았거든요 그래서...”
그는 말하면서도 성경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세나엄마와 이혼하고부터 몇 년째 일도 하지 않고 저렇게 성경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재대로 먹질 않아 몸은 미라처럼 말라버렸고 닳아 해진 청색 잠바는 봄이 왔어도 좀처럼 벗을 줄을 몰랐다. 그의 미소는 초췌한 모습만큼이나 비참해보였고 또 비굴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아무튼간에 내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제일 먼저 tv를 틀었다. 집안의 적막은 내게는 참기 어려운 것이어서 나는 tv를 보든 안보든 항상 틀어놓는다.
부엌으로 와서 장봐온 것들을 꺼내었다. 소갈비 1kg과 감자, 버섯, 양파, 당근, 애호박, 오뚜기표 갈비양념. 갈비를 물에 담가놓고 감자와 당근을 큼직하게 썰었다. 애호박은 볶음을 만들거라 채만 썰어서 따로 두었다. 핏물을 뺀 갈비를 데친다음 양념에 재워두고 시간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나는 손을 씻고 커피를 내려서 거실로 갔다. tv속에선 유재석이 김종국의 멱살을 잡고 덤벼들다가 내동댕이쳐졌다. -김종국!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내가 죽인 것도 아닌데 뭐! 웃음이 났다. 커피는 금세 식었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재운 갈비를 냄비에 넣고 조금 조리다가 썰어둔 감자와 버섯, 양파를 차례대로 넣었다. 당근도 넣을까 말까 하는데 tv를 보고 있던 해원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쏘아붙였다.
“당근은 넣지 마.”
갈비찜을 중불에 올려두고 애호박을 볶기 시작했다.
2.
“에이! 씨발거.”
해원아빠는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는 씻지도 않고 TV앞에 새우깡과 맥주를 펼쳤다. 그는 내일 새벽 운전을 해야했기에 나는 맥주병을 뺏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잔만 마시고 잘 거야.”
그는 컵을 가져와 맥주 두 잔을 그득히 따랐다. 나는 긴가민가했으나 결국은 옆에 앉아 같이 맥주를 홀짝였다. TV에서는 평소 보던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새우깡을 집어먹으며 막연히 화면만을 응시했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나 공장 그만뒀어.”
“...”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분명 한달 전부터 내일은 쉬겠다고 몇번을 말했는데 바쁘다고 갑자기 출근을 하래는 거야. 지랄하지 말라고 김팀장하고 한바탕 싸우다가 그냥 깽판치고 나와버렸지. 흐흐.”
“...”
“씨발놈들이. 내가 내 자식 보러 가겠다는데 지랄들이야.”
“...”
“내일 갖다 와서 당신이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나 한번 알아보자고. 흐흐. 정부에서 준 돈 받아놓기를 참 잘했네.”
그는 말하고 나서도 뭐가 우스운지 연신 낄낄거렸다.
자정이 되자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TV소리가 계속 들려오길 바랬건만 어쩐일인지 소리가 멎었다. 해원아빠가 방으로 들어와 옆에 누웠다. 완전하지 않은 어둠속에서 곧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까칠하고 커다란 손이 내 티셔츠를 젖히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모래를 움켜쥐듯. 그 손길에 나도 그의 허리를 안아보지만, 그러나 어찌할까. 그는 무력했고 내 가슴은 말라버렸으니. 그는 수면을 어루만지듯 내 얼굴을 더듬어 본다. 해원일 닮은 내 눈썹. 해원일 닮은 내 작은 코. 해원일 닮은 내 입술. 나도 그의 가슴에 손을 대본다. 해원일 닮은 그의 마음. 해원일 닮은 그의 표정. 해원일 닮은 그의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 우리는 사랑을 나눌 수가 없다. 언제나처럼. 내가 그의 얼굴에서 바다를 찾고 있듯이 그도 내 얼굴에서 바다를 찾고 있을 테니까. 우리도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걸까. 울음이 차오른다. 밀물처럼.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3.
알람은 필요 없었다. 새벽4시. 나는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와서 밥을 했다. 어제 만들어뒀던 갈비찜과 애호박볶음을 덥혀 도시락을 쌌고 해원아빠도 주섬주섬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벽 5시쯤 되서야 차를 몰고 세나 아빠네로 갈 수 있었다. 그의 집은 불이 켜져 있었다. 차 시동을 끄자 담벼락 너머로 어렴풋이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않게 해주소서.... 내 딸 세나가 차갑고 차가운... 부디 춥지 않게.... 해주소서. 세나의 친구 해원이, 수지, 진우, 성철이... 모두... 않게 해주소서...하나님 아버지...”
해원아빠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했지만 나는 애써 만든 도시락이 식을까 걱정스러웠다. 30분이 넘어서야 세나아빠는 성경을 손에 들고 차에 올랐다.
푸른 새벽. 하늘도 바다로 보이는 시간. 내 품에 따뜻한 도시락만 있지 않았다면 나는 차창을 열고 바람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저 새벽바람속에선. 아마도. 내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내 아기의 비누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세나아빠도 뒷좌석에 홀로앉아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는 바다에 도착할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바다가 보였다. 머나먼 수평선 위로 얕게 깔린 해무. 간간히 보이는 눈익은 차들과 우리보다 먼저와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 수철엄마, 지원아빠. 상준엄마... 서행하던 해원아빠가 누군가를 알아보고 차를 세웠다. 세나엄마.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영혼처럼 서 있었다. 해원아빠가 세나엄마를 부르자 그녀는 우리를 알아보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1년 만에 그녀를 마주한 세나아빠는 그제서야 품속의 성경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을 뒤로하고 우리는 바닷가로 갔다. 신발을 벗고 바닷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자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차디찬 냉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참담해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바닷물이 치마 끝을 적실 때 쯤 해원아빠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품에 안은 도시락을 물에 띄웠다. 식지않은 도시락에 김이 피어올라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해원아빠는 또 울고 있었다. 도시락은 물 위를 떠다니며 하염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