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돌아보며

에세이

by 참새

그가 물류센터를 퇴사하는 마지막 날, 우리 둘은 간단하게 갈비탕을 먹기로 했다. 근 2년간 열심히 일한 당신을 송별회없이 보내주는게 아쉽기도 했고 오늘 저녁은 혼자 밥을 먹기 싫었던 탓도 있었다.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서른 일곱의 중년남자였고 그는 겨우 스물 다섯의 팔팔한 청년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여기저기 물류센터를 전전한 모양이었다. 남자치고는 외소한 체구에 얼굴에 가득한 주근깨가 특징이었다. 겁이 없달까. 말도 많고 웃음도 많은 친구였다. 그는 아버지가 큰 빚을 지셨다는 둥, 뒷바라지 해줘야하는 동생들이 있다는 둥 불행한 가정사를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다. 물류팀 여자들은 그의 사연을 들으며 공감하거나 안타까워했지만 나로써는 동정을 사고 싶은 의도가 빤해서 시큰둥했었다. 그때 그는 나의 무관심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어딘가 사랑에 굶주린 듯한 태도가 있었다.
나는 말이 없었고 그는 말이 많았다. 그와 나는 모든게 정반대였으나 맞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둘 다 술을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단촐한 송별회가 성사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 어디로 가나요. 대리님?"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조수석에 탔다. 내가 가던 곳 있어. 아직 6시밖에 안됫건만 바깥은 벌써 캄캄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몇번의 좌회전과 우회전으로 늘 가던 갈비탕집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고나니 좀 더 비싼데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그는 별로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성격으로는 김밥천국을 데리고 가도 그저 감사하다고 할 친구였다.
"오. 여기 맛집인가요?"
그는 단촐한 식당 안을 둘러보더니 기대에 찬 과장된 몸짓으로 수저를 세팅했다.
그가 물류센터를 그만두게 된 경위는 사람들과의 트러블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열의가 있었고 늘 이런저런 의견내는걸 좋아했다. 어느 날은 물류 피킹방법을 바꾸자며 팀장님과 한바탕 싸운 일이 생겼는데 하필 사람들이 전부 모인 조회시간이었다. 팀장님과 그의 언쟁은 모두의 찬반투표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대로라면 분명 효율은 좋아지겠지만 그만큼 현장직인 우리 물류팀은 업무강도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 어려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만 있을 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팀장님을 비롯한 오래된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의 방식을 무시했다며 화를 냈고 동정심 많던 여직원들은 그가 지나갈때마다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때 편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유일하게 찬성하는 사람이 대리님일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편은 무슨..."

"대리님이 보기에 제 생각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죠?"

"나는 잘 모르겠어. 그냥 좀... 변화가 필요한거 같아서."

섣부른 참견을 하기에는 나는 그리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그저 가기전에 따뜻한 저녁밥 한끼를 사주는 것 뿐이다. 갈비탕은 금세 나왔고 나는 배고플 그의 그릇에 내 갈비 한덩이를 떠넘겨주었다. 그는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했다.

"고기를 시켜줄까?"

"아뇨. 얼른 먹고 가야해요. 해돋이보러 갈거거든요."

"지금? 차도 없이 어떻게가려고."

"동서울역에서 강릉가는 고속버스 타려구요. 9시 막차예요."

지금 시각에 대중교통으로 동해바다를 간다는 건 억지였으나 그냥 나름의 계획이 있을거라고 여기며 물어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입맛이 없어져서 괜스레 국물만 휘적거리고 있었다.

"대리님. 저요. 2025년엔 꼭 해내겠다고 다짐했던 것들이 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것 같은데, 근데 지금 보니까 하나도 이룬게 없더라구요."

그는 자책하듯 쓰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해줄수가 없었고 그도 어떤 답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곧 갈비를 뜯는데 집중했다. 나도 마지못해 국물을 떠먹기 시작했다. 좀처럼 식지않는 갈비탕의 김이 우리 두사람의 얼굴로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를 근방의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안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조잘댈줄 알았던 그는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듯 캄캄한 차창 밖을 응시하기만 했다. 몇개의 불빛들이 밤바람에 쓸려가고 있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그는 굳이 배웅해주지 않아도 된다며 차에서 내렸다. 나는 별수 없이 운전석에 앉은 채로 손인사를 했다.

"내년에는 혼자가지 말고 꼭 여친 만들어서 가."

"하핫! 그건 2026년 새해다짐으로 꼭 넣어야겠네요."

그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마치곤 지하철역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나중에 연락하자고 약속했지만 허울뿐이었다. 휴대폰에 누를일 없는 연락처로 오래 오래 남다가 언젠간 지워지게 되리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보내고 혼자남은 나는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을 탔다. 그가 바라봤었던 차창밖은 혼자 오래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알법한, 어떤 외로움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는 지하철을 타고 한창 동서울역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동서울역에서 막차를 타면 자정이 넘어서야 강릉에 도착할 것이고 택시를 타든 걸어가든 어찌저찌 해뜨기 전까지는 바다에 도착할 것이다. 그 길고도 번거로운 밤길은 아마도 피곤하고 외로울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왜 그의 의견에 손을 들었었는지.
그는 십년전의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그의 열정과 순수한 바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마도 대부분은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말이 없어질까봐. 더는 기대하지 않게 될까봐. 나는 그가 걱정스럽다.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2026년을 맞이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건강, 행복, 돈을 소원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들떠 있을 것이고 새해에는 모든 일이 다 잘 될거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지나간 날들이 행복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분명 그렇겠지만 적어도 매년 1월 1일은 행복하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은 황금빛 물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다시금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그는 푸른 새벽이 저무는 서쪽하늘을 지켜볼 것이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발밑의 수억개의 모래알갱이들이 사실은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부서져버린 사람들의 꿈이었다는 것을 그는 상기할 것이다. 그 백사장 위로 기록된 지나간 인연들의 발자국을. 그는 나이테처럼 1mm 더 두꺼워진 그림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