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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Mar 01. 2019

해체를 통해 창조의 추구

들뢰즈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북미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놀랐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자유로운 왕래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 실망했지만 모호한 합의보다는 결렬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요즘 나는 철학책을 저술한다며 서양철학을 파헤치고 있지만 바로 펜을 들지 못한다. 과학기술 서적을  때에는 어떤 과학기술 사건을 일어나더라도 즉시 이해하고 그 가치를 발견했다. 그런데 북미회담 결렬과 같은 사건에서, 주위 사람들은 실망과 기쁨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지만 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나는 이 쪽 글에도 좋아요를 누르고, 저 쪽 글에도 좋아요를 누른다. 둘 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용의 태도가 없지는 않지만,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미셸 푸코가 칭찬한 이 세기의 철학자 들뢰즈는 차이 해체의 철학자로 통한다. 이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지만 동일한 사람은 결코 없다. 생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얼굴이 다르다. 아니면 지문이라도 다르다. 사람들은 남과 다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다. 사람만이 아니다 제품도 차별화를 통해 살아 남고 생물도 차별화를 통해 생존한다. 한 부모가 여러 자식을 낳는 이유도 자식마다 다른 능력을 지닌다는 확신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차이의 힘을 간파한 사람이 바로 들뢰즈이다.


세계 철학사를 보면 들뢰즈가 차이의 철학을 펼치기 전에는 동일성 발견이 더 중요한 흐름이었다. 삼각형, 사각형이 서로 다르지만 도형이라는 동일성 개념을 발견하고, 소와 돼지가 서로 다르지만 동물이라는 동일성 개념을 찾아내었다. 들뢰즈 이전에는 동일성의 철학이었다면 들뢰즈 이후에는 차이의 철학이다. 세상에서 동일성 개념이 거의 정립되었기 때문에 사상의 전환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차이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기존 제품을 해체하고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면 된다. 낡은 사상을 지탱하는 단어를 해체하고 새로운 단어 조합으로 새 이데올로기를 구축할 수 있다. 새로운 창조물을 위해 해체는 불가피하므로, 들뢰즈가 차이와 해체를 연결시킨 이유를 알 수 있다.


한 국가에도 동질성과 차이가 동시에 나타난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으로 동질성이 높을 듯하지만 오히려 차이가 부각된다. 분열되고 분단된 한반도가 세계 평화와 문명에 기여하기 위한 창조적 방법은 무엇일까? 이념적 갈등에다 지방은 비워가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매일 본다. 나를 늘 괴롭히는 문제지만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배운 과학기술, 철학으로도 해결책이 없었다. 오늘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표지 사진의 반석천을 걸으면서 들뢰즈를 떠 올렸다. 한국적 문제에는 들뢰즈의 해체가 정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 이웃들이 벌써 참여하고 있음에 한숨 놓았다.


유독 한반도가 분단국가로 남은 이유는 한반도가 단일 민족으로 교착화 되었고, 오랫동안 한 민족의 근친결혼으로 포용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만약 북한에 다른 민족이 살고 있다며 혹은 남한에 다른 민족이 살고 있다면 한반도 여행이 제한될 이유가 없다. 따라서 한민족만의 근친결혼을 막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피해 해외로 탈출을 해야 하며, 출산율을 더 낮춰 한민족의 인구수를 줄여야 한다. 또한 지방 사람을 수도권으로 집중시켜 외국인으로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즉 한반도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 단일 민족을 해체하여야 한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윤동주 서시의 한 구절이 나를 위로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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