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지 못한 채, 나는 또 말을 남기고 왔다

조용함을 견디지 못해 친구의 하루를 묻지 못했던 날에 대하여

by 조이플연수

늘 그 자리를 뜨고 나면 생각난다. 오늘도 나는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일어났다는 걸.


친구는 지난 몇 년 동안 참 많은 일을 견뎌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친구가 혼자 일하는 곳을 찾아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러웠다.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가 가장 먼저였는데, 막상 마주 앉으니 내가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조용한 시간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을까 봐, 그 조용함이 친구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까 봐.


“요즘 어때, 많이 힘들지?” 묻고는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친구가 대답할 수 있도록, 자기 속도를 찾을 수 있도록,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워주는 침묵을 나는 잘 못 만든다. 대신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있었던 일, 요즘의 걱정, 사소한 불만까지. 그게 분위기를 풀어주는 방법이라고, 친구를 웃게 하는 방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친구는 늘 그렇듯 내 말을 다 받아준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고, 내가 멈추는 순간을 기다려준다. 그러다 어느새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말로만 채워진 채 끝나버린다. 친구는 손님을 대하듯 다정하게 나를 보내고, 나는 “다녀올게” 같은 인사를 남기고 일어난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쯤, 뒤늦게 생각난다. 아, 오늘도 나는 친구의 하루를 묻기보다 내 하루를 쏟아놓았구나. 친구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말이 나올 수 있는 틈을 내가 다 메워버렸구나.


묘한 속상함은 죄책감만은 아니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친구가 내 앞에서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고, 말이 나오지 않는 날이면 그 침묵조차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좋은 친구’의 모양을 말로 만들어 붙인다. 괜찮게 보이고 싶어서, 도움이 되고 싶어서, 무엇보다 어색해지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요즘은 작은 연습을 해보려 한다. “힘들지?”라고 묻고 나서 바로 다음 문장을 서둘러 붙이지 않는 것. 친구가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순간이 실패가 아니라고, 나부터 허락해 주는 것. 말로 친구를 살피는 대신, 조용히 곁에 있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보는 것.


아마 나는 또 실수하겠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다르게 앉아보고 싶다. 친구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내가 먼저 귀를 열어두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