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의 아쉬움을 담아...
에디톨로지(Editology)는 '창조는 곧 편집'이라는 의미로 김정운 교수가 만든 조어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스티브 잡스식 창조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 에디팅(editing)을 어설픈 주장이라 칭하며, 에디톨로지는 차원이 다른 이론이라고 주장할 만큼 김정운 교수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묻어납니다.
이 시대는 정보가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은 게 문제입니다. 막강한 도구인 스마트폰과 늘 함께하며 큐레이션을 위한 어플리케이션도 설치해보지만 오히려 감당하지 못할 정보만 늘어나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김정운 교수는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p. 43)"라며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목차를 보면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까지 상당히 거창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생활과 관련된 소재가 많은데다 김정운 교수의 입담과 약간의 자랑질, 소위 '드립'이라 불리는 요소까지 간혹 더해져 마치 김정운 교수 강연의 청중이 된 것 같은 느낌까지 받습니다. 일부 (특히 심리학 파트) 전문적인 내용 앞에서는 제 지적 능력의 한계도 느끼지만, 한마디로 책은 재미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이 의미하는 바가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듯 '편집' 또한 더 넓은 의미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영향을 주고 앞으로도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운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책을 쓰면서 ‘논의의 깊이’에 관해 참 많이 고민했다. 일단 무조건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정도로 예로 드는 사례 또한 무한도전, 지휘자 카라얀, 일본만화와 미국만화 비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지도 투영도법,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축구 중계 등 결코 까다롭지 않고 어디선가 들어본 소재를 활용합니다. 독일 유학 시절의 경험이나 일본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창작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결국 에디톨로지로 에디톨로지를 설명하는 셈입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그 전개가 매끈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하루에 세 번 숟가락으로 뜨고 젓가락으로 집는 사람과, 포크로 찌르고 나이프로 자르는 사람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이유다”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일본 책의 구성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그토록 순종적인 거다. 위에서 시키면 아주 착하게 따라한다. 책을 읽을 때,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책을 읽으니 반항적인 성향을 띠게 될까요? 책을 적게 읽으면 덜 순종적이거나 덜 반항적인 사람이 될까요?
물론 이 책은 김정운 교수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니 꼬투리를 잡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명확하지 않은 전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적인 정보 수집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집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지만, 단순히 정보를 잘 짜 맞춘다고 해서 ‘에디톨로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얼마 전 EBS에서 황금비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황금비율이라고 알려진 1:1.618, 그리고 그 예로 알려진 많은 사례들이 실은 황금비율에서 어긋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이 황금비율이라 믿고 있는 거죠. 애플의 로고 또한 황금비율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로고를 디자인한 사람은 황금비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스케치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편집, 에디톨로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정보를 잘 엮어내 새로운 통찰에 다가가는 건 의미가 있지만,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를 짜 맞추는 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바이벌 예능에서 논란이 되는 ‘악마의 편집’이 이와 같은 게 아닐까요?
김정운 교수는 마지막 꼭지에서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체적 읽기를 강조합니다. 책 앞부분에 목차가 있고 맨 끝에 찾아보기가 있는 것은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으라는 뜻이라 말합니다. 일견 이해가 갑니다. 저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행여 앞으로 이 책을 선택할 독자는 보다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