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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우 Nov 04. 2017

푸를 청에 봄 춘

스무 살 되기 직전의 열아홉, 진짜 나의 회사가 생겼다


이야기에 앞서 나는 10월 25일 기준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지 네 살이 되었고, 손에 쌀가루가 묻은 지 4년째이자 우리나라 나이로 열아홉 살인 떡 만드는 사람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안 잡힐 듯싶어 4년 동안의 삶을 4분 동안 표현해본다.




2011. 07

이상한 부모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치킨집 한쪽에서 고등학교 1학년인 오빠가 부모님의 염려 속에 학교를 그만두고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다. 떡볶이 떡을 직접 뽑는 등 거창한 시작이다.

이때 최신형 제병기를 이용하여 떡을 직접 만들곤 했는데, 일반 방앗간에서 떡 만드는 방식과는 다르게 불린 쌀을 넣어 마찰열을 이용해 바로 떡으로 만든다. 덕분에 오빠의 떡은 쌀로 만들었지만 뜨거울 때 먹으면 밀떡과 비슷하게 정말 맛이 좋다.




2013. 10. 25

마지막 등굣길


오빠의 알 수 없는 방황으로 인해 중간중간 가게 문 닫는 날이 잦아지면서 나는 학교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장사를 대신해오고 있다. 나는 떡 만드는 것도, 장사도 꽤나 즐기며 하고 있다. 오빠는 결국 질풍노도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 사정으로 떡볶이 장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오빠가 부모님 가게 전면의 반을 차지한 덕에 부모님의 장사도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치킨 장사를 위해 인테리어 작업을 하던지 누군가 떡볶이 장사를 하던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3인 나는 졸업 일수만 채우고 장사에 전념하기로 했다.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나 스스로 다른 무언가를 도전해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학교와 이별할 수 있었다. 떡에서 길을 찾자!

나는 그렇게 수원북중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2014. 01

예민한 녀석들


떡볶이 장사에 점점 더 재미를 느끼던 중 최신형 제병기가 고장 났다. 가장 맛있는 떡을 만들어 주는 녀석이지만 고장 날 경우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아주 예민한 녀석이다.


어떤 점이 문제였는가 하면, 이 세 가지 부품에 마모가 생겨 기계간 간격이 벌어지게 되어 마찰열 감소로 인해 떡이 익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기계의 특허권자, 공급하던 업체에서는 맛있는 떡을 만드는 노하우가 없었기에 사실상 포기하고 버린 상태이다. AS를 받아야 하는데 AS 해주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다.

한두 번 마모 현상이 발생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수소문 끝에 기계 깎는 업체에 맡겨 부품을 새로 깎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1~2mm 간격 차이 때문에 결국 우리가 원하는 식감의 떡을 만들 수 없었다. 원리와 구조를 알게 된 것을 이익이라 생각하고 결국 다른 기계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2014. 02

최신에서 전통으로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최신형 기계는 AS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방앗간 방식의 소형 제병기로 교체하여 쌀로 만들지만 밀떡보다 더 부드럽고 쫄깃한 떡을 만들기로 했다. 최신 떡 기계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맛이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떡이라고 불릴만한 떡을 만들 수 있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떡으로 장사를 할 수 없어 계속 연구하기로 하였다.

일반 방앗간처럼 쌀을 불린 후 방아에 빻고, 찜기에 쪄내어 백설기가 된 떡을 떡볶이 떡으로 뽑아내는 방식
용량문제로 두번이나 모터 수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가 과부하되어 모터가 망가졌다. 소형이기에 모터의 힘이 약한데 그걸 몰랐던 나는 계속 떡을 만들고 있고 시간이 흘러 결국에는 모터가 고장 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제병기는 주로 떡을 소량씩 만드는 떡 카페나 가정집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작업 중 계속되는 고장이 염려스러워 일반적인 제병기로 바꾸기로 한다.




2016. 04

맨땅에 헤딩


점차 떡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떡과 친구가 된 지 3년 정도 되자 해결책이 뚜렷해져 가고 있다. 품종 선택, 불리는 시간, 물 빼기, 빻고 채치기, 전통 발효법, 성형 방법 등 다양한 실험 해왔다. 기존에 가래떡을 연구하는 분들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3년 간 수 백 차례의 실험 결과 2% 부족하지만 식어도 딱딱하거나 잘 풀어지지 않고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가진 떡볶이 떡을 만들게 되었다. 2%, 2%, 2% 한 달이 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멥쌀과 찹쌀의 발효과정




2016. 12

애기떡 탄생


처음부터 하나하나 점검해 보았다. 전 과정의 수분량을 정확하게 통제하자 드디어 기존 떡볶이 떡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떡볶이 떡이 탄생하였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블로그에 애기떡이란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였다.


애기떡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떡볶이뿐만 아니라 모든 요리에 어울리고 모든 요리를 더욱 맛있게 만들어 준다.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밀떡 마니아도 멘붕 시킨 쌀떡이 완성되었다.





2017. 03

크라우드 펀딩 만나다


꽤나 마음에 드는 떡이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이때 크라우드 펀딩을 만났다.


크라우드 펀딩의 사전적 의미로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하며, 내 아이디어를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얼리아답터를 만나는 채널이다. 국내 대표적으로 와디즈, 텀블벅, 스토리 펀딩 등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에도 몇 가지 투자방식이 있는데, 나는 이번 1월부터 9월까지 와디즈와 텀블벅에서 세 번의 리워드형 펀딩을 진행했다. 리워드 펀딩이란 메이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투자하면 제품, 서비스 등으로 보상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와디즈 홍군아떡볶이 프로젝트 바로가기

떡을 만들기만 했지 이걸 누구에게 알리고, 어떻게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이지 머리에 든 것 없는 바보 멍청이였다. 이런 별 볼일 없는 나의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내심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와디즈는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신 많은 분들 덕에 좋은 성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는 금전적인 이득 이상으로, 사람이란 존재의 힘을 일깨워준 든든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2017. 05. 10

라이스 블록


이후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신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소개되며 자본금 1,000만 원으로 법인 설립 계획을 세운다.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일인지 몰랐다. 미성년자다 보니 법인 설립이 가능한지 법무사 사무실에서 조차도 잘 모르시고, 시청 직원분들도 의문을 표시하였다.


회계, 법률문제 등 사업에 필수적인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세무사 사무실에서 많이 배웠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내가 뭐 하나만 일처리를 해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다. 그렇게 시청, 세무사, 법무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일 처리를 한지 한 달 만인 2017년 5월 10일. 진짜 나의 회사가 생겼다. 그의 이름은 '라이스 블록'

라이스 블록의 뜻은 말 그대로 쌀과 블록의 합성어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음식들이 소개되고 밥상에서 조차 쌀은 주인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밀에 점령당한 떡볶이에 주목했고, 앞으로는 다양한 쌀 음식에 주목할 예정이다. 사회가 만든 기준에 갇혀 살지 말고 넓은 상상으로 조립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라이스 블록이라 정했다.




2017. 05

작업장 공사


자금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최적의 작업장을 찾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나에게 최적의 작업장이란, 우선 복잡한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떡 작업장으로 사용하기 좋은 곳, 착하신 건물주와 월세가 무지 싼 곳이다.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닌 끝에 부모님 치킨가게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65만 원 월세방의 작업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최대한 절약해야 했기에 직접 공사를 선택하였고 아빠와 함께 공사를 시작하였다. 현실과는 달리 이 과정을 특별함이라 포장하고 싶다.




2017. 10

떡쟁이와 사업가


다행히도 온/오프라인 친환경 매장에 우리의 떡볶이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직원이 나뿐이라서 조금 벅차지만 그래도 떡쟁이와 사업가의 역할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오늘이 참 아름답다. 


푸를 청에 봄 춘, 청춘. 이 묘한 긴장감 속에 살다 보면 늘어나겠지 노련함, 내 밥줄. 

헬리콥터 지나가면 뚜두 두두 거리는 느낌이 건물 안까지 전해져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이 공간이 썩 좋지 않지만, 단순히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곳의 삶이다. 






썩 괜찮은 마땅한 방법으로 재밌게 살아보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추억으로, 앞으로의 삶은 모험으로 감히 글을 써보려 합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를 제일 모릅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처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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