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다른 연령, 다른 고찰

기관의 차이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인가, 내 개인의 통솔능력의 부족일까

by 최우리


[머리말]

1년에 한 번 꼴로 작성하는 듯 한 브런치. 아주 오랜만에 문을 두드린다. 나만의 대나무숲은 대체로 기분 좋고 행복할 때보다는 고민이 들거나 기록하고 싶을 때 생각나는 법이다. 근황 아닌 근황을 남기자면, 나는 교직생활 4년 차에 만 4세 학급의 담임교사로 나를 '업그레이드(?)'시켰다. 한 연령에서 3년은 있어야 적어도 그 연령과 시기상의 개인차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전문가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유치원의 생태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만 움직일 수 없으며 그때 그때의 원 상황과 적절한 교사배치가 요구되다 보니, 나도 이에 따라 다른 연령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올해 6살 반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첫 해 만 1세, 2,3년 차 만 3세, 4년 차 만 4세. 만 5세까지도 언젠가 경험해 보고 싶었던 욕심 많은 나로서는 다 경험해야 내게 가장 잘 맞는 연령을 찾을 수 있다고 느낀다. 그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다. 다만 최근의 고민을 돌아볼 때, 내가 과연 높은 연령에 적합한 교사인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다.


[만 3세와 만 4세의 차이점]

우선 2년간 보아 온 만 3세 다섯 살의 아이들과 만 4세 여섯 살의 차이를 기술하자면- 우선은 스스로 척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인원도 평균 3-4명이 늘고, 부담임 교사도 상주하지 않고 있어(우리 원 한정) 교사의 부담이 늘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유아들도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어느 정도 스스로 해내는 능력이 많이 생긴 것을 본다. 만 1세를 보다 만 3세 아이들이 혼자 화장실에서 옷을 내리고 소변 뒤처리를 하고 나올 때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때의 기억과는 또 다르게 이제는 밥을 먹여주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점심 후 떨어진 밥풀을 정리하며, 외투를 옷걸이에 잘 걸어 지퍼까지 올리고, 심지어는 '무엇 무엇 내일까지 챙겨 오세요~' 하는 교사의 언어전달도 가정에서 척척 잘 전달해주고는 한다. 그래서 만 3세는 아기의 흔적을 가진 '형님'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만 4세는 조금 더 나아가 정말 '어린이'가 되는 과도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도 척척 잘하는 귀여운 이 아이들은 또래 관계에 있어서도 작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친구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또래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 놀이하는 과정보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느껴가는 것 같다. 언어발달도 빨라 교사를 향한 사랑의 편지는 정말 '글자'로 쓰인다. [최우리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등의 편지는 매일 몇 장씩은 받는 아이들의 진심이다. 자라나는 과정을 직관할 수 있다는 점과, 특히 작년 5세 반에서 연임으로 데리고 올라온 아이들의 변화까지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어 즐겁고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다. 수업적으로도 단순 체험식보다 인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활동으로 연계확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슬슬 대화가 통하더라'는 차이가 있다. 어찌 다르건 귀여운 아이들임에는 차이가 없지만.


힘든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만 3세와 달라서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도 분명하다. 우선 스킨십의 농도가 옅어졌다. 작년에 보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것이라 더 덜해진 것인지, 아니면 으레 입학 첫 달 눈물로 하루를 보내던 아이들을 안아주며 달래야 하는 만 3세아 교실의 환경과 시작부터가 약간 다른 느낌이 있어 그러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행동으로, 포옹으로, 뽀뽀로, 손잡기로 표현하는 스킨십보다는 말로, 눈빛으로 표현하는 유아들이 늘어나면서 더 자주, 더 많이 부대끼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많이 안아주는 만큼 사랑이 깊어지는 걸까? 그래서 작년반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보다 정을 붙이는 과정이 조금은 더 걸렸던 것 같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또 확실히 언어발달이 빠르고 사회성도 그만큼 발달하다 보니 친구관계에서의 불편함을 잘 느끼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관철시킬 수 없는 상황이 처음으로 생긴다거나, 작년 같은 반 친구들은 내 놀이에 잘 따라와 주었는데 올해는 그런 친구가 없고 다 자기 위주로만 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많아 '나는 친구가 없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공격성의 표현도 신체적 공격성에서 언어적 공격성으로 분화/발전되니 교사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또래관계에서의 갈등상황이 유발되고는 한다. 도덕성도 발달한다. 가장 고민인 부분인데 아무래도 살아가며 많은 예외의 상황을 마주하게 될 텐데, 아직은 자신의 도식을 동화시키는 과정이 익숙한 아이들이라 인지적 불평등(처음 보는 상황에서 기존의 약속과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아닌지. 아이들 기준에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면 기존의 공식을 적용하려고 해서 생기는 오류가 있다. 6살의 교실은 규칙과 약속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절대적 도덕성이 발달하며 도덕성의 기준을 가장 권력자라고 느끼는 교사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면 다 되고 안된다고 하면 다 안되는 거야. 의 잘못된 오류가 발생한다. 나는 이 점이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구체적인 걱정- 2학기 상담]

얼마 전 2학기 상담을 마쳤다. 1학기 상담은 대체로 학부모님들께서 아이의 정보를 알려주심과 동시에 새 학급에서의 적응도에 대한 부분을 중심으로 상담이 이루어진 편이라면, 2학기에는 그간 발달해 온 아이들의 모습을 공유하고 그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고민과 걱정에 대해 상담을 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번 상담을 마치며 물론 내 덕분에 너무 잘 지낸다고, 유치원을 너무 좋아한다며 감사를 표현한 학부모님도 계셨고, 나의 학급운영 방식이 딱 만 3세와 만 4세의 그 적정선을 지키며 단호할 때는 단호하고 애정을 표현할 때에는 말로써 그 연령에 맞게 잘해주시는 것 같다는 식으로 감사한 말씀을 듣기도 했다. 1학기에 비해 적응도 잘하고 걱정도 없다며 그저 잘 지내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경우도 계셨다.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스스로 잘 커주고, 마음으로 늘 격려하고 응원해 주신 학부모님의 덕보다 교실의 대표자로서 내가 한 번에 공치사를 듣는 느낌이라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 남은 총평으로써 2학기 상담의 후기는, [내가 너무 통제적인 교사는 아니었나?]에 있다.


'아이가 언어전달을 너무 잘해주고, 챙겨가야 할 것이 있으면 다 챙겼는지 수시로 확인해요'

'일상적인 상황과 달라지는 경우가 생기면 선생님한테 이야기했는지를 꼭 물어봐요'

'유치원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잠들기 전에 얘기해 주는데, 선생님한테는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대요'


1번째 방식의 표현은 가정에 따라 긍정적으로 보시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강박'이라고 느낄 수준으로 너무 과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어 우려를 표현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이야기를 들으면 우선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우선 아이들의 성향적 특성과 시기적으로 도덕성 발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학급운영 방식이 너무 통제적인 탓인가-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늘어난 인원수, 감당해야 할 업무의 증가, 지원인력의 감소, 연령의 증가에 따라 기대하는 정도가 높아진 것. 이런 것들이 나를 작년에 비해 아이들을 더 사랑으로 품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올 해의 나는 사랑이 많은 교사였나, 아니었나를 돌아본다면 여지없이 아닌 것만 같다. 사랑의 척도를 스킨십으로만 나눌 수는 없지만, MBTI로 치면 융통성을 가지고 변화 가능성에 여지를 두는 P가 아닌 통제하고 계획하고자 하는 J 성향이 짙은 편이라 나도 모르게 미성숙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너무 높은 잣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6살은 처음이라-라고 나를 한 꺼풀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6살은 처음이지만 교사로는 이제 4년 차로, 아이들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제법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살에 맞는 교육방식이 있을까? 어린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담임교사가 지도하는 영역도 달라지고, 중재의 강도나 개입도도 달라지며 요구하고 개인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는 부분도 달라진다지만. 아직까지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한다.


[첫해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며]

유치원으로 이직을 할 때 처음 들었던 동료선생님의 '선생님은 참 살가운 편이신 것 같아요'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훈육을 너무 안 한다고 느껴진 것 같고, 반대로 지금의 나는 능숙해짐과 동시에 교육의 본질을 가끔은 잊어버리게 된 건 아닐까.


첫 어린이집에 다닐 때 동료 파트너 선생님(선임)과의 1년을 돌이키며 아이를 존중하고 애정을 기반으로 훈육하는 방식을 처음 배웠었다. 물론 그때는 만 1세 영아였고 지금은 만 4세 형님을 만나고 있는지라 훈육의 방식도, 통솔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초심을 떠올리는 과정이 계속 필요하다고 느낀다. 좋은 교사가 되어야지. 아이들에게 '6살이', '5살이', '7살이' 잘 기억은 안나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라고 느낄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어린 시절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어른의 작은 실수를 이해해 주고 용서해 준다고들 한다. 빠르게 회복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성인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의젓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린 시절의 기억 중 몇 가지는 트라우마처럼 남기도 한다. 무서운 선생님, 두려운 선생님과 함께 한 1년.이라는 기억을 심어주는 것만큼 죄의식이 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속 안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먼지 날리는 내 브런치를 다시 찾았지만, 그 해답은 내 안에 있음을 안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때리지도 않지만 눈빛으로도, 작은 시그널로도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늘 반성적 사고를 하는 교사가 되어야지.


첫해의 다짐을 늘 떠올리며, 더 사랑하고 아끼는 태도로 어리고 아직은 부족한 내 아이들을 감싸야지. 말로써, 글로써 되새기면 마음에도 한 번 더 새겨지리라 기대하며. 지금보다는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내 장점만 극대화해서 아이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선생님', '웃긴 선생님',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년 차여도 부족하기만 한 내 모습을 더욱 개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번 브런치 글을 찾아올 수 있기를 나 자신도 대단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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