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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코 Sep 15. 2023

20화 시나몬자두잼 편

고독사 직전인 자두

20화 시나몬자두잼 편


남편이 어떤 선생님에게 자두를 받았다며 무심하게 건넸다. 언뜻 보아도 시큼해 보이는 게 손이 안 갔다. 남편은 두어 개 먹으면서 갖은 인상을 썼다. 이건 새콤을 넘어서는 게 확실해 보여 일단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게 벌써 한 주 이상이 지났나? 잊고 지냈다.


냉장고 과일칸에 고독사 직전인 자두를 꺼냈다. 나는 그동안 외면하고 방치하면서 사망케 한 채소와 과일을 떠올렸다. 얼마 전에 아사시킨 올리브나무도.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그것만 깜빡하고 물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 가!

나는 이렇게나 잔인한 사람이었다.


자두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일단 씻어서 껍질을 깎았다. 씨를 빼고 잘라서 먹어보니 달콤한 것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마스코바도를 넣어 잼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고민이 제거되니 이제 과정에 몰입하면 된다. 이런 결정을 누가 대신 해주면 참 좋겠다.


‘아, 망했다.’

서서히 잘 졸여지는 자두잼에 시나몬 가루를 엎질렀다.

‘조금만 넣으려고 했는데……숟가락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는데……’


한바탕 소동 끝에 자두잼이 아닌 시나몬자두잼이 완성되었다. 선발대에 시나몬맛이 먼저 지나가면 후발대에 대기 중인 자두가 입안에서 잔향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많이 안 달고 꽤 괜찮은 맛이다.


고독사 직전의 자두를 이렇게나마 살려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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