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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코 Sep 19. 2023

22화 열무김치 편

어느새 나는 아줌마 딸이 되어버렸네.

22화 열무김치 편


새벽 4시에 못 일어날까 봐 밤잠을 설쳤다. 알람을 여러 개로 설정하고 자정이 넘어서 다시 잠들었다. 나는 알람을 못 듣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지각형 꿈을 꿨다. 식상할 정도로 진부한 꿈이지만 그 꿈이 꽤나 겁나긴 했나 보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그렇게 나는 예정 보다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커피 한 잔과 차키를 찾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부모님 가게에 일 하시는 분이 사정이 생겨 못 오시게 되면서 나는 긴급 투입되었다. 오는 손님들 마다 물으시는 같은 질문에 엄마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소식을 전하며 단골손님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드렸다.

“그 집 며느리가 임신 중독증으로 응급실에 있다고 부산으로 급히 내려가셨데요. “

소식을 전할 때 같은 말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 내 나름 조미료도 첨가하면서 말이다.


일을 시작하고 7시간 반이 지났다. 엄마가 이제 마무리하고 집에 가라며 일당을 주셨다. 열무와 배추를 사주시고 반찬 하라며 재료를 챙겨주셨다. 나는 어느새 아줌마 딸이 되어 부모가 주신 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부모란 이런 존재인 것일까? 언젠간 나도 아들내미 손에 뭐 하나라도 더 쥐어주고 싶은 늙은 어미가 되겠지. 나는 기쁘게 그날을 기다려본다.

나는 받은 일당으로 부모님 가게에서 추석 선물들을 샀다.


오랜만에 번 돈으로 고기도 사고, 장도 보고, 강아지 간식도 사고, 그리고 열무김치도 만들었다. 저녁 먹으면서 마신 맥주 한 잔 때문일까? 아님 새벽부터 일한 덕분일까? 나는 열무김치를 냉장고에 넣지도 못하고 초저녁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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