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집에서 일하기? 집은 나의 사무실

by Yeony Do

어디든 나의 노트북과 함께하면 그곳이 사무실

나는 나 자신을 ‘문화예술 기획자’라는 단어로 소개한다. 다양한 분야의 소재들을 조각조각 모아 문화와 예술로 엮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행사와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여러 지역에 답사를 다녀오고, 제작을 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게 된다. 마음에 와닿은 다양한 소재들을 하나의 주제와 목적으로 엮기 위한 리서치 시간, 그 의도를 모두가 이해 가능하게 풀어내 정리하는 시간, 모든 사안들의 집행과 정산 등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는 시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컴퓨터 혹은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든 바로 나의 오피스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정해진 위치의 갖춰진 ‘오피스’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 나에겐 서울이 주요 활동지이지만, 런던을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의 소속인 ‘슬리퍼스써밋’의 구성원들이 런던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기에, 코로나 19가 시작되기 전부터 원격으로 시차를 맞추어 일하는 것 또한 나에게 굉장히 당연한 일이다. 작년엔 제주도에서 ‘벨롱벨롱나우’라는 예술로 지속가능성을 꿈꾸는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많은 시간을 제주도에서 보내곤 했다. 올해도 국내의 여러 곳에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다.


런던, 마카오, 제주 어디든 항상 함께하는 나의 맥북


그럼에도 코로나 19 펜더믹으로 인해 이동과 만남에 제한이 생기다 보니, 다른 어느 곳보다 ‘집’이 나의 주된 오피스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범지구적인 상황이 되어 ‘쉼’의 공간의 집의 기능이 모두에게서 확장되기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글과 연구를 내놓고 있다.

이 글 또한 그런 맥락에서 시작되었고 문화기획자라는 특수성을 띠는 직업을 가진 나의 ‘집’이자 ‘오피스’인 공간에서의 일상을 기록해 보려 한다.





집에서 일이 (공부가) 가능해?


학창 시절부터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집으로 바로 귀가하여 집에서만 공부하는 바람에, 2~3주간 수업 시간 외에는 학교에서는 나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친구들은 이야기하곤 한다.

‘집에서 어떻게 공부가 되냐?’라고 묻는 친구들도 많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우리 집이, 내 방이 내가 다른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영국에 살며 석사를 위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도서관에서 반출이 불가능한 책을 빌리거나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나 업무를 위해서만 밖을 나섰다.


솔직히 말하면, 씻고 화장을 하고 집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불편한 옷을 입고 타인을 신경 쓰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피하려 선택했던 공간이 집이었다. 책들을 마구 펼쳐두고, 가장 편하다 느껴지는 자세로 머리를 바짝 묶어 올리고, 안경을 쓰고, 집중이 안 될 땐 듣고 싶은 음악을 마구 틀어두고. 이러한 모든 조건을 만족 가능한 공간이 내 집 외에 또 어느 곳에 있을 수 있을까?


자유롭게 무엇이든 펼쳐두고 작업이 가능한 주방 식탁


지금도 나는 마치 학생처럼 많은 시간 리서치가 필요하고, 글과 여러 매체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습관 때문인지 집에서 근무하고, 줌으로 회의를 하고 언제든 노트북만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이 업무의 형태가 나에겐 꼭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특히, 온전한 집중을 마치고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내가 방금 집중했던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큰 힘이 된다.


물론 종종 지나친 편안함, 늘 똑같은 분위기, 가족들의 상황 등으로 인하여 정말 집중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런 순간이면 어디든 이동해 잠시 기분의 전환을 하고 오곤 했다. 하지만, 그마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찾아오자, 나는 또 금세 그 상황에 적응하여, 집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 전환의 방법들을 발견해나갔다.






내 방 책상, 거실, 서재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오늘은 주말을 맞이하여, 아침 일찍 꽃시장에 다녀와 봄을 한 아름 집에 들여놓고 엄마와 꽂아둔 꽃병들이 가장 잘 보이는 주방의 식탁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꽃들 덕분에 기분 좋은 주말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평일엔 보통 내 방 책상에 앉아 업무들을 처리하곤 한다. 문을 닫고 온전히 집중하여 작성해야 할 서류들도 많고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자료들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협력사나 함께하는 기획자, 제작자 혹은 아티스트 분들로부터 많은 전화가 걸려오는데, 가족들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과 동시에 반대로 가족들의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방 한켠에 잔뜩 붙어있는 포스트잇 마인드맵, 통화 업무를 보는 모습


날씨가 좋은 날이거나 조금 기분이 처지는 날이면 부엌 식탁이나 서재 베란다로 나간다. 우리 집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살았던 시간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볕이 좋은 날이면 아주 잠시라도 그 볕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을 가지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등 위로 햇빛이 닿아 따뜻해지는 감각과 자연광으로 인해 다채롭게 변하는 주변의 모든 색감들을 일을 하면서도 온전히 느끼고 싶다.


심야 작업 중, 볕이 잘 드는 서재의 모습


마지막으로, 집안에 앉을 수 있는 모든 곳이 작업 공간이 되기고 한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나의 베드 트레이 덕분이다. 침대, 소파, 바닥 등 어디든 등을 대고 앉아 그 작은 책상을 펼치면 2~3시간은 거뜬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구역으로 변화한다. 지금도 침대에 앉아 은은한 스탠드 불을 켜 두고 트레이 위에서 글을 적어나가고 있다. 내가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아름 꽃아 둔 봄 꽃들과 나의 베드 트레이



다음 편에선 위에서 나열한 모든 스폿들이 더욱 나에게 적합한 곳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 ‘일명 엄마의 손길이 닿은 가족들을 위한 홈 카페’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