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은 어느 날, 잔잔한 노래가 나오는 운치 있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필요한 업무 작업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상적인 업무 장면일 것이라 생각한다.
카페에 들어섬과 동시에 우리는 커피 한잔과 함께 카페의 한 자리와 그곳에서 보낼 시간을 주문한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음료를 받아 자리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노트북의 커버를 열고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집’과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두고, 굳이 ‘카페’라는 특정 공간을 찾아가 그 공간을 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일까?
아마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카페를 찾는다.
1. 일과를 모두 수행하기 위한 부스터, 카페인 수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하루의 일정들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선 카페인을 이용해 나를 깨울 필요가 있다. 대체로 영국 시간에 맞춘 미팅을 마치면 업무와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새벽에 잠들어서 한국 시간에 맞춘 업무들의 소화를 위하여 오전 일찍 기상하는 나에겐 커피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심지어 무언가에 집중할 때 한 모금씩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옆에 없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2. 맛있는 디저트
카페의 또 다른 매력은 달달한 디저트가 있다는 것이다. 매일 색다른 디저트를 골라 당을 충전하는 순간은 확실한 행복이다.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다가 한입 두입 집어먹는 음식들. 끼니를 챙길 시간이 없거나, 간단히 때우고 싶을 때, 카페에서 판매하는 샐러드를 비롯한 디저트들은 요긴하기까지 하다.
3. ‘카페’가 가진 분위기
카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커피를 내리는 적당한 소음과 잔잔한 노래, 종종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는 그 분위기, 우리는 그 분위기에 취하여 계속해서 찾게 되는 듯하다. 각각 분리된 자리에서 느끼는 독립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개방감 덕분에 혼자 오롯이 집중하고 싶으면서도, 어딘가에 답답하게 홀로 갇혀있다는 생각을 떨치고 싶을 때 카페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카페에 들를 때마다 마셔야 하는 음료, 꼭 가장 집중이 잘 될 때 다가오는 영업 마감 시간, 주변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 너무 큰 음악 소리 등 때문에 카페에서의 집중을 포기하고 사무실로 터벅터벅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코로나 19 확산 대응 단계에 따라 이용 시간이 제한되고 매장 내 취식이 아예 불가능해지기도 하면서 카페라는 공간도 더 이상 온전한 작업의 공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집을 ‘카페화’ 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은 이제 우리 집을 ‘홈 카페’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제든지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 다양한 종류의 차, 엄마의 취향이 가득 담긴 식기와 주방기구, 그리고 재료를 아끼지 않는 엄마표 디저트까지. 워낙 집을 정리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예쁘게 정돈된 집안 곳곳에 앉기만 하면 그곳이 ‘카페’이자 ‘오피스’가 된다.
잔잔하게 원하는 노래를 틀어두기도 하고, 그날의 기분에 맞춰 룸 스프레이를 뿌려 향을 바꾸기도 한다. 카페처럼 마감 시간도 없고, 언제 어디서든 충전기를 연결할 수 있는 집안 곳곳의 콘센트들, 필요한 모든 자료들을 마구 펼쳐 볼 수 있는 공간들 카페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하다.
요즘은 특히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엄마가 집으로 배달시키는 식자재들의 종류와 형태가 더 다양해지고 있어서 매일매일 집에서도 새로운 디저트와 간식들을 맛보고 있다. (홈 카페의 오픈을 위하여 새벽 배송으로 배달되는 식자재들을 찾으러, 새벽에 엄마와 주민 공동시설에 다녀와 택배를 열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난 몇 년간은 런던에서 석사를 하고 일을 하며 떨어져 지냈고, 작년에는 제주도와 양평 등에서의 행사 진행을 위하여 매달 두, 세 번씩은 집을 떠나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나는 우리 가족이 다른 가족들에 비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여행도 자주 가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집을 떠나서 보내곤 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고, 재택근무를 하며 엄마와 일상을 옆에서 더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엄마의 대부분의 시간들이 아빠, 동생, 나를 보살피기 위한 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리고 문뜩 이 펜데믹이 지나가면, 앞으로 내가 언제 또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루고픈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 나의 시간들은 내가 기록해나가기도 하고, 너무 고맙게도 나의 주변 분들이 기록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의 시간들은 누가 기록하고 기억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집에서의 엄마와의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노력 중이다. 엄마가 해준 음식들과 엄마의 취향이 담긴 집의 부분들을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하고, 짧은 글을 써놓기도 한다.
그리고 업무들 사이에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쪼르르 엄마 옆에 앉아 수다를 떨곤 한다. 내가 찍어둔 사진들을 보며 서로 취향을 나누고(사실 내가 엄마의 취향을 배운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긴 하다.) 함께 우리의 공간들을 꾸며나갈 계획을 세운다. 아주 작은 소품 하나도 식재료 하나도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서로 물어봐주는 시간들이 참 좋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을 연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도 엄마에게 있다. 기획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글들을 작성하게 되고 다양한 곳에 제출하기도 하고 업로드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 글들을 가장 먼저 애정이 어린 눈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바로 부모님이다. 재택근무를 하며 엄마와 함께 할 수 있게 된 시간들에 대한 기록, 요즘 나의 생각들을 남겨둔 이 글들 또한 부모님께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