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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y Do Jun 02. 2022

아(我)래를 보고 돌아보고 나아가기

장비치 작가님과 마음수련

나름 항상 열정적인 편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며 어릴 적 학교에 제출할 가족신문에 가훈을 쓰라고 해서 아빠께 우리 집 가훈은 뭐냐고 여쭈었을 때, 덤덤히 말씀해주신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우리 집 가훈이 나는 좋았다. 딸의 숙제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내신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최대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인 것 같다. 특히 가슴 뛰는 일에는 더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렇겠지만 종종 이명이 스치듯 한없이 공허해지고 감정이 오르고 내릴 때가 있다. 가끔은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도 많았다. 그러다 2020년 장비치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갤러리나 전시장에서 혹은 누군가의 소개로 이어진 미팅이 아니었다. 친구네 주말농장 겸 쉼터였던 양평의 하심 지라는 곳에서였다. 도심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주변 친구들과 예술인들을 모았던 자리에 비치 작가님도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지인이었기에 그곳에서 작가님이 거의 유일하게 처음 만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둘만 남겨지는 순간에는 어색함이 감돌기도 했지만, 그 감정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웃길 정도로 우리는 순식간에 친해졌다.  그 후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계속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진행될 수 있는 밀도 높은 작업들을 함께하고 있다.


장비치 작가님은 프리블릭(Priblic) 아트라는 이름으로 사적인(Private) 영역과 공적인(Public) 영역을 이어내며 타인과의 관계성을 이야기하고 사회의 구조를 전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 사적인 영역을 꺼내 보임에 있어 자신의 마음과 끝없는 대화를 나눈다.  “‘마음'을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꾸준히 그녀만의 ‘마음지도'를 그린다.


내 앨범 속 비치작가님의 마음지도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면, 많은 작가분들이 스쳐간다. 모든 일이 모든 작업이 사실 마음이 동해야 시작되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 저렇게 내 감정이, 마음이 이런 상태이구나.’를 빨리 파악하고 흐르는 대로 놓아주는 경지에 이른 듯한 표현이 가능해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구나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 그런 작업들과 메시지들이 “나도 저렇게 비워내야지! 나도 저렇게 대인배가 되어 잘 넘겨내야지!” 하게 하다가도, 때로는 그 거리감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나를 더 작아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비치 작가님이 마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돌아보니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보기”를 온몸으로 외쳐온 듯하다. ‘내가 나 생긴 그 상태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그런 내가 어떻게 사회에서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를 편하고 포근하게 꺼내 두곤 한다. 본인은 늘 본인도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 어느 날은 자꾸 본인을 미워하고 구박하다가 어떤 날은 또 칭찬해주고 싶고, 어떤 날은 그런 자신의 마음 수련 여정을 신나게 털어놓았다가 어느 날은 이게 어떤 의미가 있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던 그 솔직함이 ‘사람’ 같아서 좋다. 그래서 작품들을 더 편하게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작가님과 대회 중 고민을 한마디 툭 던지면 마치 같은 감정을 먼저 느껴보고 고민해본 적 있구나라는 게 너무나도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좋다.


서론이 너무나도 길어졌다만, 이번 주에는 소마미술관 유튜브에 장비치 작가님의 인터뷰가 업로드 되게 된다.  스포츠 아트라는 소제를 가지고 전시 주제를 잡으면서 승민 큐레이터님과 나에게 스포츠와 예술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고 그 둘 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계속하여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공통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그 단련의 노력이 계속하여 이어지고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 마음의 단련과 순환을 비치 작가님이 설치 작품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작가는 세 단계로 마음 수련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 각각의 단계들이 전시실 별로 하나씩 설치되어 전시장의 이야기들이 계속하여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몸으로 수렴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


간략히 나의 언어로 작품을 설명해보자면,


아(我)래보기

아(我)래보기, 장비치, 2022 (사진: 장비치)

관람자가 작품의 앞에 서게 되면 무한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마음수련의 첫 번째 단계로 자신의 몸과 생김새를 내려다보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제안한다. 작품을 보며 거울에 비친 나를 충분히 들어다 본 후, 나의 목 아래로 내 몸도 찬찬히 내려다보게 된다. “내가 오늘 이런 옷을 입었구나. 내 몸짓과 몸동작은 이런 모양이구나. 나를 지탱하고 서있는 나의 발은 이렇게 힘을 주고 있구나.”를 인지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머리와 눈은 우리의 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깥쪽을 보는 방향으로 위치해있기에, 하루에 나의 몸을 진득하게 내려다보는 시간이 모두 합해도 몇 초이거나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을 유도하며 마음수련의 첫 번째 단계를 구성해두었다.


돌아(我)보기

돌아(我)보기, 장비치, 2022 (사진: 장비치)

자신을 차분히 내려다보았다면 이제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며 그 여정이 마음에 남긴 길들을 떠올려 본다. 작가님은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검은색 선으로 구성된 ‘마음지도'라는 자신만의 작품 형태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 ‘돌아보기' 라는 이름의 작품은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본 것을 ‘돌아가는’ 형태의 마음지도에 표현해 둔 것이 참 재밌다. 그녀는 지나온 과거에 기억하고 싶은 좋은 것들도 많지만 ‘상흔’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마음에 있는 상처를 입었던 자리에 남은 흔적도 길이 되고 그게 깊어지기도 하고 얕아지기도 하는 게 진짜 대지 위에 길이 나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아(我)가기


나아(我)가기, 장비치, 2022 (사진: 장비치)


마지막 마음수련의 단계로 나아가기를 제안한다. 작품은 실제로 작가의 몸을 감아 테이프로 캐스팅한 자화상이 마음지도 방석을 머리맡에 두고 엎드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자세는 가톨릭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새롭게 사제로 거듭나는 사제서품식의 성인 호칭 기도의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지난 두 단계를 통해 알아간 나에겐 분명히 부정적인 면들도 있겠지만, 그에 매여 매몰되기보단 그것도 본연의 나의 모습 중 일부라 인정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새롭게 태어나 늘 나아가려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주에도 그녀가 제안한 이 세 가지 단계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기에 이런 감정이 드는가 차분히 깊이 내려다보고, 그럼에도 내가 지나온 여정과 내 주변의 사람, 관계성 그리고 어떤 파열들이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게 했는지 돌아보고, 이렇게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보기로.


비치 작가님은 자신이 공공과 개인이 맞닿은 지점에서 더욱 편하고 익숙한 재료와 매체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닿아 펼쳐지는 예술의 사회적 효용을 실험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나는 종종 인스타그램에서 비치 작가님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업로드한 소감, 아이들과 함께 이런 작업의 방식을 따라 해보고 싶다는 한 예술 교육 선생님의 게시물, ‘나아가기’를 프로필 사진으로 해둔 계정을 발견한다. 욕심일 수 있지만, 전시장을 찾은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그녀의 메시지가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고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은 이 세 단계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직접 소개하는 작품의 설명이 담긴 인터뷰 영상이 이번 주에 업로드되면 이곳에도 올려두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예술기획자 도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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