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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Nov 08. 2023

책 좀 그만 읽어!

책 좋아하는 아이 만들기 노하우

우리 집에 책을 좋아하는 딸이 있다.

우리 집에는 책을 좋아하는 척하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아빠도 있다.



아이 12개월쯤 문화센터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물론 지금도 더없이 잘 지내고 있다.) 문화센터가 끝나고 그 당시 유치원생 첫째를 키우던 언니네 집으로 모였던 날, **북클럽이란 걸 알게 됐다. 이 언니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기 좋아하며 그걸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날, 우린 **북클럽 영업사원과 마주했다. 갓 돌 지난 아기들의 발달검사지를 체크하며 5명의 엄마들은 수능시험 보듯 진지했다. (우리 애 천재 아냐? 하는 바로 그 시기다.)



며칠 후 결과를 듣기 위해 문화센터가 끝난 뒤 그 언니네 집으로 다시 모였다. 다들 천재들만 모인 건가. 다섯 아기 모두 상위 3%라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아쉽게도 지금은 아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전집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안 읽을 거 뻔한데 돈지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위 3%가 기뻤던 걸까. 분위기에 휩쓸린 걸까. 영업사원의 최면에 걸린 듯 전집불신론자인 내가 계약서를 쓰고 있었다.




책 값으로 2년 동안 한 달에 119000원씩 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눈치가 보였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전집불신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앞에 놓여있는 전집 3질은 나 혼자 들고 들어와 은폐하기엔 너무 무겁고 알록달록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거 다 책이야???"

"어.. 근데 사랑이가 발달이 빠르대. 책이 뇌발달에 얼마나 좋은데, 나중에 사랑이 공부 잘하면 다 내 덕이야."

나는 눈치반 민망함반이 섞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앞으로 책이 더 올 거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워 J형인 나란 사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 위해 책육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하기 시작했다. 타의 반 자의 반, 설렘반 두려움반으로 나의 책 육아가 시작됐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북클럽 약정을 추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출판사별로 책의 내용과 분위기, 그림체가 다른데 한 출판사 책만 봐야 한다는 단점과 약정을 어길 시 생기는 위약금 때문이다. 하지만 장점도 한 가지 있었다. 전집이라면 질색하는 우리 부부가 그 많은 책을 사줬을 리 없었다. 집에 강제로 책이 많아지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책에 노출됐다.

12개월부터 책을 읽어주는 나를 보며 남편은 '쟤 뭐 하냐'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난 반석 위의 소나무처럼 끄떡하지 않고 잠자리 독서와 책 읽어주기를 계속했다. 아이는 책의 내용을 줄줄 외웠다. 말도 한글 읽기도 책으로 자연스럽게 배웠다. 난 이 모든 게 책의 영향이라고 생각했고, 책을 좋아하는 딸을 보며 흐뭇했다.

9살인 지금, 아이는 아직도 책을 좋아하고 즐긴다. 서점가는 걸 놀이공원만큼 좋아한다.



"엄마 나 칠판이 잘 안 보여."

안과에 가보니 안경을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까운걸 많이 보는 아이들이 눈이 금방 나빠진다고 한다. 게임도 아니고 유튜브를 본 것도 아닌데, 책을 봤다고 눈이 나빠졌다니. 안타깝고 짜증이 났다. (정작 하루종일 게임하는 남편은 시력이 좋다.) 나도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 그 불편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 없이 잘 알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딸에게 책 금지령을 내렸다.



"하루에 책 30분만 읽어. 책 보고 나서는 5분 동안 창문 보고 있어. 멀리 있는 걸 봐야 좋대."

내 딸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2-3시간은 끄떡없이 책을 보는 아이다. 30분은 아주 가혹하게 짧은 시간이었다. "책 그만 읽어." "이제 그만 봐"  이런다고 시력이 다시 돌아올 리 없는 걸 알면서도 아직 교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다.

30분이 지나면 사랑이를 베란다로 데리고 나와 5분 동안 멀리 보라고 시켰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우습고 아이러니하다. 전집을 2년 약정으로 샀던 내가 이젠 책 읽지 말라며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안경 쓴 딸의 모습에 익숙해졌고 내 딸은 잔소리 없이 다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다.(대신 밝은 데서 보라고 잔소리를..)



주변 지인들이 어떻게 하면 사랑이처럼 책을 좋아할 수 있냐고 자주 묻는다. 지인들에게 책 추천도 해주고 방법도 알려주면서 도움이 되는 게 나름 기뻤다. 그래서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책 육아로 아이를 키운 게 아니라 책육아로 내가 성장했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아주 소소한 TIP

유아 때는 무조건 읽어주기(9살인 지금도 잠자리 독서를 해줄 때가 있다.)

전면책장 적극활용하기(책의 표지에 눈길이 가도록 돕는다.)

아이가 어릴 때는 칭찬스티커를 활용하면 독서의 첫 흥미를 끌기에 좋다.

바닥에도 책 한 권씩 뿌려놓기(이거 좀 참기 힘들어요.)

집에 책이 많아야 한다.

엄마도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기.(독서대에 책 펼쳐놓고 핸드폰 꽂아두면 된다.)

책을 읽어주다가 절정 부분에서 책 덮어 버리기(이제 잘 시간이야, 나머지는 내일 읽자.)

심심할 시간을 주기.(학원으로 너무 바빠버리면 책과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자주 다니는 곳마다 독서대에 책 펼쳐 놓기(우리 집엔 독서대가 4개 있다.)

책의 내용을 묻거나 이해했는지 확인하지 않기(중간부터 보든, 휘리릭 한 권을 읽든, 못 본 눈 하기)

취향에 맞는 책 빌려다 주기

책장에 꽂힌 책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바꿔주기

외출할 땐 항상 책 한 권 들고나가기(안 읽어도 상관없다.)

편독도 오케이.

엄마 친구 아들이 책을 안 읽어서 고민이라는데 사랑이가 조언 좀 해줄래? 하며 칭찬하기.

책을 읽고 있는 뒤통수에 대고 '어쩜 저렇게 책을 좋아해' 하며 들리는 혼잣말 해주기.

엄마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그러면 신나서 본인이 읽은 책 이야기를 한다.)

도서관 가는 길에 즐거운 추억 남겨주기(자전거 타고 가기,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간식 사 먹기 등)


내가 우울한 생각의 공격을 받을 때 내 책에 달려가는 일처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책은 내 마음의 먹구름을 지워준다.
-미셀 드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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