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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May 18. 2024

우리는 자몽 얼그레이 케이크

자몽이랑 얼그레이, 이 조합 신선하네. 과연 어울릴까?




날씨가 무척 좋을 예정이고 카페에 가는 걸 싫어하는 우리 딸은 미술대회에 나가서 집에 없고, 오랜만에 쉬는 남편이랑 카페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선물 같은 날씨 덕에 아침부터 들떠서 예쁜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감성 물씬 풍기는 펜케이크 카페. 루프탑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옥뷰가 멋진 카페. 선재 업고 튀어에 나온 그 카페! 까지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내가 좋은 카페 많이 찾았다~ 이 중에 어디가 좋아?"

"행궁동?? 거기 주차 못해. 주말에 사람 얼마나 많은데."



들떠 있던 마음에 시원하게 찬물 끼얹는 남편. 오랜만에 가고 싶은 곳도 찾아보고 립스틱도 발랐건만. 가보지도 않고 주차 타령이다. 가기 싫은 건가? 귀찮나?


"가기 싫으면 말고~ 난 안 가도 상관없어...."(거짓말)

"다른 데 가던지. 저번에 갔던 데도 좋았잖아."

"아.. 거기? 뭐.. 거기 좀 별로"(나 행궁동 가고 싶어)

"그래? 아니면 카페거리 가자."

"카페거리? 자주 가던 데라.. 그래 거기로 가든지.. 근데 날씨 좋으니까 야외로 가고 싶기도 하고"(행궁동 가고 싶어)

"그냥 행궁동 가자."



사람 많은 걸 싫어하고 특히 주차 자리 없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는 남편과 행궁동으로 향했다. 네비에 공영주차장을 찍고 도착했는데, 만차. 다른 공영주차장을 찍고 가도 만차. 세 번째 공영주차장까지 만차다.

"거봐. 오늘은 주차 못할 거라고 했지. 평일에 와야 된다니까."

"나도 알아. 그냥 집에 갈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더 아쉽다. 선물을 받았는데 풀지 못한 기분이랄까.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바쁜 남편과 오랜만에 외출했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니 괜스레 마음이 더 상한다.

"저 앞에 있는 카페 괜찮아 보이는데? 저기 갈래?"



오, 예쁘다. 작지만 포근한 베이지색 간판에 나무로 둘러싼 작은 테라스까지. 우리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자몽얼그레이케이크?? 누가 이런 걸 시키냐. 맛없다고 남기지 마라."


사실 나도 자몽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일은 자고로 달아야 맛 아닌가. 시큼 새콤한 과일보다 달달한 과일을 좋아해서 자몽은 거의 먹지 않는다. 게다가 자몽은 쓰기까지.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리에 뷔페에 가서 몇 번 집어 먹어봤을 뿐.




시럽이 뿌려져 적당히 단 맛이 나는 쌉싸름한 자몽과 진한 얼그레이향. 완벽한 조합이다. 각자 개성이 강한 맛과 향을 가진 재료라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사실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적당히 달고 괜찮네."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처음부터 이곳에 오고 싶었던 것처럼 즐거웠다.

취향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 구석은 전혀 없는 남편과 나는. 2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가 점점 테이블로 드리워지는 햇살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괜찮았던 자몽얼그레이 케이크처럼 너무 다른 우리도 그럭저럭 적당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엔 행궁동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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