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50만 원이 생기면 무얼 할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50만 원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금액이라 그동안 꼭 사고 싶었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는 돈이라고 했다. 곰곰히 생각하다 답했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나 먹지 뭐.”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9년 차다. 불편하진 않지만, 가끔은 괜히 몸이 움츠러든다. 이 복잡하고 바쁜 서울 속에 혼자 덜렁 남겨진 것 같아서. 그래서였을까. 나는 여분의 돈과 시간을 사람과 만나는 데 쓰곤 했다.
얼마 전, 회식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왠지 아쉬웠다. 원래대로라면 합정역에서 환승해 서너 정거장은 더 가야 했지만, 무작정 홍대입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연남동 숲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은 내가 연남동에 살던 시절, 가장 좋아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약간 오른 술김에 조금 감성적인 글을 SNS에 남겼다.
그런데 조금 당황스러운 결과가 이어졌다.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한 친구는 끈질기게 시간을 맞추더니 얼마 후에 저녁을 함께 먹었다. 대화는 일상적이었지만, 그 끝에는 ‘너 괜찮니?’라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결국 조금 웃긴 사진과 함께 ‘저 괜찮아요. 술 먹고 올렸어요.’ 라는 포스팅을 올린 후에야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 후에도 친구들의 연락은 이어졌다. 계기가 된 걸 수도 있고, 정말 잘 지내는 게 맞는지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는 이 말을 건넸었다. “너 잘살았네.”
내일모레면 29살이지만, 통장에 모아둔 돈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마다 조금은 걱정스럽다. (엄마, 말 안 해도 문제란 걸 안답니다) 지난 3년간 벌었던 돈이 적지는 않았을 텐데, 어딜 갔나 생각해보면 고스란히 친구들을 만나는 데 썼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많은 선택지 중에서 ‘관계’라는 종목에 투자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쌓아 올린 관계가 나중의 나를 먹여 살리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 한 명쯤은 남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 단조로워진다는데, 그 지루하고 똑같을 일상을 함께 따분하다고 말해줄 사람이 생긴다면, 그거야말로 삶에 있어 꽤 성공한 투자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거금의 시간과 돈을 들여 관계를 산다는데, 나는 적은 돈과 시간으로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미 미래를 함께할 관계를 만들고 탄탄히 다져나가는 중인 거니까.
아직 투자는 생소하고 어렵다. 계산이 잔뜩 들어간 투자라면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건, 돈과 관련된 투자라고 해서 삶에서의 투자와 다르지는 않을 거란 사실이다. 그 어느 분야든, 나의 투자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산 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 결과가 무엇일지라도 과정에 충실하며. 그리고 마침내 선한 영향력이 함께할 거라는 한 줄기의 희망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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