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을 만나는 방법
'문학청년'이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작품 창작에 뜻이 있는 청년. 또는 문학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청년."
으레 혹은 소위 그렇게 불리는 게 아니다. ‘문학청년'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록되어 있었다. 일반명사가 고유명사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문학을 즐겨 읽던 사람들에 대한 낭만과 동경의 마음이 들어 있었으리라.
시간이 흘러 문학청년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시선은 존재한다. 그리고 특별함은 때로 배제를 불러오기도 하는 법. ‘문학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부담감도 함께 자리하는 듯하다. 그 마음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목록>
A. 출판사의 오프라인 공간, 북카페
B. 오래된 출판사의 새로운 모험 - 워트프루프 책, 메트로북
C. 오디오북 전성시대
A. 출판사의 오프라인 공간, 북카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 마주쳐야 한다고 했다. 출판사의 오프라인 공간은 마치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나 세미나실의 기능을 겸해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게 만든 후, 문학 작품을 곳곳에 배치해 익숙하게 만든다.
지금은 사라진 문학동네의 북카페 '카페 꼼마'
[Photo : 카페 꼼마 ⓒ 문학동네 페이스북 ]
지금은 사라졌지만, 서울 연남동이 시작되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에는 커다란 북카페가 있었다. 바로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 꼼마’이다. 꽤 널찍한 규모를 자랑했고, 한쪽 벽면은 15단 책장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동형 사다리가 있어야만 꺼낼 수 있는 위치에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집 등이 가득 꽂혔다. 그곳엔 늘 사람이 북적였고, 손님들은 커피를 기다리며 혹은 자리에 앉아 공부하며 가끔 시선을 책장으로 고정했다. 음료를 내어주는 잔에는 작품의 제목과 짤막한 줄거리가 적혀 있었다. 카페 꼼마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평생 몰랐을 수도 있는 어느 작가의 한 작품을 만나도록 한 것이다.
까페 창비의 큐레이션 '북 DJ 오늘의 사연입니다.'
[Photo : 까페 창비의 큐레이션 ⓒ까페 창비 인스타그램]
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까페 창비’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중에서도 작가를 중심에 세우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북 DJ 오늘의 사연입니다'라는 큐레이션 코너는 북 DJ가 사연을 소개하고 이에 어울리는 책을 함께 추천한다. 초대 북 DJ는 김현 시인이었고, 2월 말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했다. 3월 첫 주말에는 문학 작가들과 플리마켓을 열기도 했다. 작가를 독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로 데려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셈이다. 물리적·심리적으로 작가와 가까워진 독자들은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작업의 과정을 응원하게 된다.
까페 창비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cafe_changbi
지금은 문을 닫은 합정동 빨간책방은 위즈덤하우스가 운영했다. 이곳 3층에서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녹음했는데, 한 달에 2-3회 정도는 공개방송을 진행해 독자들을 책 공간으로 초대했다. 그 외에도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 1984의 편집숍 ‘1984’, 사계절 출판사가 운영하는 ‘카페 에무' 등 출판사와 독자의 접점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B. 오래된 출판사의 새로운 모험 - 워터프루프 책, 메트로북
1966년 시작된 민음사는 오래되고 유명한 출판사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스톤 페이퍼를 활용한 '워터프루프 책'이다
스톤 페이퍼를 활용한 워터프루프 책
[Photo : 워터프루프 책 ⓒ민음사 블로그]
스톤 페이퍼는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버려진 돌을 재활용해 만든 미네랄 용지인데, 주로 스쿠버 수첩이나 방수 지도를 만드는 데 사용되며 물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지난여름, 민음사는 피서 기간을 맞이해 워터프루프 책 4종을 선보였다: <82년생 김지영>, <보건교사 안은영>, <한국이 싫어서>, <해가 지는 곳으로> 등. 워터프루프 책은 ‘바캉스를 떠나 책을 읽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제작 방식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하철 1~5호선 이미지를 활용하여 디자인한 책, 메트로 북
[Photo : 메트로북 ⓒ민음사 블로그]
두 달 후, 민음사는 ‘메트로북'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 다섯 편의 저명한 고전 소설을 뽑아 서울 지하철 1~5호선의 각 이미지에 걸맞게 디자인한 것이다. 리디자인(re-design)을 거친 메트로북은 지하철에서 읽기 편한 판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뒷면에 교통카드를 부착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표지 디자인에서는 각 지하철 노선도를 이용해 작가의 얼굴을 그려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디자인의 책은 금세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C. 오디오북 전성시대
“소설을 읽는 삶과 읽지 않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아르테 작은책
[Photo : ⓒ아르테 텀블벅]
아르테 출판사의 사소한 질문은 사람들에게 소설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바쁜 일상 중에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가 탄생했다. 그중에서 주목할 부분은 ‘소리책(오디오북)’이다. 텀블벅으로 처음 공개한 작은책은 종이책과 소리책이 하나의 패키지를 이룬다.
은모든 작가의 <안락>과 김솔뫼 작가의 <인터내셔널의 밤>, 2종은 각각 배우 한예리와 김새벽의 목소리로 녹음되었고, USB에 담겨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활자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감정과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우의 음성으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사람들은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르테 소리책 유튜브
<박솔뫼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 (w. 배우 김새벽)>
밀리의 서재 리딩북 광고 모델, 배우 이병헌, 변요한
[Photo : 밀리의 서재 리딩북]
매달 일정한 돈을 내고 무제한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밀리의 서재'에서도 오디오북을 시작했다. 새로운 서비스의 이름은 '리딩북'. 기존 오디오북은 책 한 권을 모두 읽는 경우가 많았지만, 리딩북에는 리더(reader)가 책의 중요한 부분만 짚어 30분 내외로 읽어준다. 그동안 배우 변요한과 구혜선, 방송인 유병재 등이 참여했으며, 밀리의 서재의 광고 모델이기도 한 이병헌이 녹음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일주일 동안 1만5천 명이 듣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설가 카프카의 유작 원고를 둘러싼 소송을 그린 뮤지컬 ‘호프(HOPE)’의 개막에 앞서 출연 배우들이 카프카 소설 <변신>과 <소송>의 리딩북을 녹음했다.
그 외에도 오디오북의 수요와 공급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서비스에서 다양한 배우들을 섭외해 한시적 무료로 오디오북을 제작해 공개하는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멤버 구준회는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읽었고, EXID의 하니는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을, 배우 이상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세 편을 낭독했다.
▶참고 자료
민음사 방수 책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318391768
메트로북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356782217
아르테 소리책 https://tumblbug.com/21_arte
이 글은 프럼에이[https://froma.co.kr/516]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