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모님이 하시는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OO 씨는 부모님 하고 같이 사세요? 혹시 어떤 일 하고 계세요?”
마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 같았다. 지느러미와 꼬리로 파르르 떨어 보지만, 낚시꾼의 손맛만 올려주는 미약한 저항. 순식간에 물 밖으로 꺼내져 선홍색 내장을 토하듯 갈비뼈로 가려둔 상처를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하고는 따로 살아요. 연락하지 않고 산 지는 10년쯤 되었어요.”
두 눈이 동그래지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자, 씹고 있던 밥에서 비릿한 쇠 맛이 느껴졌다.
“서로 안 보고 사는 관계가 더 좋을 때도 있으니까요.”
소개팅이란 명목으로 만난 선개팅. 만난 지 20분 만에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맞은편의 사람. 아가미가 말라가는 물고기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른 중반 이제는 사랑해서 결혼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결혼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했다. 나이·외모·직업·학력·연봉·자산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의미론적인 것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타고난 영역. 통제감을 상실하자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잃어버렸다. 사람은 인간관계의 경험이 쌓일수록 더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다. 이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위험을 크게 보고 기회를 작게 보게끔 진화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낸 순간, 마치 음식 위에 무심하게 뿌려진 통깨처럼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인지. 만남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 전 배우자의 부모님이 곧 나의 미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안정 애착이 있고, 그것을 가진 사람이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니까.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이혼했거나 불화 상태라면? 혹은 만날 때마다 싸우는 관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안이나 부모님의 모습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만 보고 한 사람을 판단하는 건 편협된 시각이 아닐까?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지배당하지 않는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정서적 금수저가 있듯, 정서적인 흙수저도 있으니까.
영유아기에 충분한 헤아림과 돌봄을 받지 못해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결과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런 애착 손상은 과거에 내가 타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 좋은 사람,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곤 했다. 지금까지 잘해주던 사람에게 작은 실망을 받게 되면, 그동안의 모든 좋은 행동을 부정하며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내가 정서적 통합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 부모는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스승과 연인을 만났다. 그리고 독서와 치유적 글쓰기를 통해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열악한 가정과 사회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노력으로 획득된 안정 애착을 형성했다. 그러나 1시간 남짓한 소개팅 자리에서 이것을 보여주고 확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문득 작은 궁금증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을 어떻게 시작했었지?’
이십 대의 연애는 열정을 원동력으로 시작해 책임감과 친밀감으로 이어졌다. 상대를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이나 수단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친한 친구처럼 다정하게 사랑이 깊어졌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배려는 친밀감을 높였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떠올렸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마음 쏟음의 과정.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말없이 쌓인 섭섭한 감정이 실망감이 되고. 미움으로 번져 분노에서 증오로 자라난다. 이것이 혐오로 커져 관계가 끊어지기 전에 대화로 감정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서른 중반 이제는 열정이 사라졌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존재가 아닌 의미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실존주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창조를 위한 용기》에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잠시 멈추는 힘이 필요하며, 이 멈춤의 순간에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반응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는 자극받아 많은 의미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직장을 구하고, 자산을 굴리고, 좋은 피부와 예쁜 몸을 만들고, 책을 읽고 공부해 학력을 쌓았다. 이제는 다시 한번 멈출 때가 왔음을 느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여유를 두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어리숙했던 이십 대의 나에게 선택이란,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약하고 실패한 삶을 살게 될 거로 생각했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른 번이 넘는 소개팅의 실패.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되돌아볼 때가 왔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현실이 때론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느낌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나와 조용한 대화를 나눈다. 감정의 폭풍에 갇히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지. 포기하지 말고 내버려 두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해야지. 내가 내린 결정을 긍정적 결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꾸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