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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Sep 22. 2024

아버지 이제 우리 따로 살아요

3부 아빠 독립시키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주인공(노라)이 만난 사서(엘름부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죽음으로 가는 게 아니야. 죽음이 널 찾아와야 해.” 

24년 8월 1일 d-day를 정했습니다. 저는 벌거벗은 채 죽음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세종사이버대학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후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나름의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멀리서 살아서 보지 못했던 형. 안부를 주고받는 고등학교 친구. 스피치대회에서 알게 된 대표. 외에도 많은 사람에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의 쿠키와 마카롱 직접 만든 잼을 선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여있었습니다. 지금 내 상황에 대해서 조금, 혹은 깊게 알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두 달 동안 정말 많은 지인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하나같이 제 결정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무어라 똑 부러지게 가름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의 인연은 검질깁니다.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어머니에게는 키워준 돈을 주고 끊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양극성정동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는 손쓸 재간이 없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서른 살이었습니다. 결혼을 꿈꿨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팠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아무런 연고 없이 돈만 벌겠다고 내려온 광주에서 고립되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상담받고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네 엄마에게 준 것처럼 돈을 줘”

내 목에 칼을 들이밀었습니다. 이후 의미 없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가장 편하고 보호받아야 할 집에서 성큼 죽음이 왔습니다. 삶의 끝을 마주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버킷리스트를 정하고 하나씩 달성했습니다. 무등산 정상 개방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10년을 살며 한번 올라가 보지 못한 무등산. 생수 한 병들고 정상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봤습니다. 소개팅 여성분에게 고졸 공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이버대학교에 편입했습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학업에 열중했고 학과 2등을 두 번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바디프로필을 찍어보고 싶어”

이야기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뚱뚱한 몸과 살이 오른 얼굴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 나를 죽이겠다며 위협하는 사람과 방문 하나를 두고 동침했습니다. 꿈속에서 내 방 침대에 누워 칼에 찔려 죽는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뱃가죽이 뒤집혀 뿌려진 붉은 선혈과 일그러진 얼굴을 접했습니다. 추한 내 모습이 떠오르자, 변기를 붙잡고 토했습니다. 이후 식사량을 줄였고 유산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4년 3월 89kg으로 시작한 다이어트는 8월 74kg으로 들어왔습니다. 봄에 핀 순백의 목련처럼, 녹 빛으로 물들이고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버텼습니다.


7월의 마지막 날 휴가의 절반이 막 지나가고 있을 때. 오랜 적막을 깨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점심때 약속 있으세요? 오랜만에 밥 먹어요.” 

그는 오른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저 자식이 왜 저러지?’

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아직은 없다. 내일 먹고 싶은 거 이야기하마.” 

내방 문을 열고 돌아와 작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설명할 자료를 다시 한번 보며 두려운 마음을 두 손으로 꼭 쥐었습니다.


몇 년 만에 조수석에 아버지가 앉았습니다.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불쾌한 살냄새가 섞였습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있을 때 그는 중화요리 집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얼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뜨겁고 붉은 짬뽕을 흡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요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추가로 주문한 탕수육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우고 나서야 내게 눈을 흘겼습니다. 너는 왜 아무것도 먹지 않느냐는 눈초리. 그제야 젓가락을 들어 건더기 몇 개를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해감이 덜 된 조갯살에서 모래가 서걱서걱 씹혔습니다. 그대로 젓가락을 내려놨습니다. 이마와 콧잔등에 땀을 닦는 그의 눈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아메리카노 한잔하고 들어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로 향했습니다. 음료를 주문하고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가방에서 어젯밤에 열심히 보고 연습한 자료를 꺼내 운을 띄웠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 따로 살아요.”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같잖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내게 뭘 해줄 수 있는데?”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내가 순순히 나가줄 것 같아? 네 마음대로 해봐.” 

아버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은사님께서 해주신 말이 떠올랐습니다. 

“네 아빠가 이 조건을 받을까?”

 “당연히 안 받을 거예요. 다만 부딪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원만한 합의를 바랐지만, 현실은 파국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앞에는 빨대도 꽂히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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