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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Sep 29. 2024

사천 원어치 깐 바지락살

3부 아빠 독립시키기

의자를 박차고 카페를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거미가 입식 보행을 하면 저런 모습일까? 팔다리가 바짝 말라 뼈마디가 보였다. 볼록하게 솟은 배는 반팔 티셔츠가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만 남기고 그가 사라졌다. 내 앞에는 빨대도 꽂히지 않은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남아있었다. 잠시 멍하게 커피를 바라봤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짬뽕에서 모래가 씹히는 일. 사람이 적을 거로 생각해서 방문한 변두리 카페에는 손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주문한 커피도 30분 만에 나왔다. 이 모든 사건이 네가 무엇을 계획하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는 것 같았다. 허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헛웃음이 실실 나왔다.

“고객님 죄송해요. 커피가 너무 늦게 나와서 기분 많이 상하셨을까요?”

“네? 아… 뭐 그게”     

낯선 사람이 말을 걸었다. 이 카페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나이는 50대 초반 정도일까? 커피도 마시지 않고 카페를 나가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오해한 것 같았다.


불과 30분 전까지 내 모습은 기상악화로 착륙하지 못하는 비행기처럼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내 눈은 자꾸만 진동벨로 향했다. 혹시 저게 고장 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름 날씨가 상당히 덥네요. 언제쯤 가을이 올까요?”

“올해 수박 한 통 못먹어서 아쉽구나.”

“덥고 습해서 힘들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짬뽕 먹었더니 맛있더라고요. 맛집 알고 계셨네요?”

“뜨거운 거 먹고 땀 흘렸더니 개운하구나”

파편화된 유리 같은 대화가 오가자 어색함과 불편함이 따라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몇 년 만에 아버지를 마주 봤다. 그의 얼굴에 모든 근육이 이완되어 있었다. 힘을 주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중력에 의해 가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읽을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와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지잉- 지이잉-”

관제탑에서 착륙 허가 신호가 울렸다. 커피를 가지고 왔다. 며칠을 준비한 자료와 연습한 내용을 말했다.

“아버지 이제 우리 따로 살아요.”

그는 커피도 마시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 커피 크레마가 사라지지 않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때. 지금, 이 상황을 오해한 주인아주머니가 찾아온 거였다.


“죄송해요. 저희 쪽에서 음료 누락이 있었어요. 이거는 서비스예요. 맛있게 드세요.”

아버지가 쇼케이스를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던 조각 케이크다. 내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웃으며 인사하고 사라졌다. 내 앞에는 아직 마시지 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과 디저트가 놓여있었다.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첫맛은 카카오 파우더의 구수한 향 이후로 마스카포네치즈의 새콤 고소함 이어 단맛이 따라왔다. 마지막 쌉싸름한 커피 향이 퍼졌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 스무 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동경했다.  피자집이나 돼지갈빗집 주방일 보다 편하고 깔끔하고 쉬울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시급 4,310원을 받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커피와 일반 음료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냉동 생지를 구워서 진열했다. 샌드위치도 만들어야 했고, 창고에서 부족한 물건을 채우고 재고를 파악해 발주해야 했다. 수시로 카운터 밖의 15개의 테이블과 의자를 쓸고 닦았다. 모든 일이 끝나면 분리수거가 남아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몸도 힘들고 정신도 피로한 아르바이트의 3D 업종이었다.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었던 스무 살. 몸이 고돼야 겨우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을 정도로 살아갈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손님 응대였다. 특히 진상 고객 응대는 너무 어려웠다. 두 번 세 번을 재차 물어서 확인하고 음료를 서빙했다. 그런데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아이스로 주문했으니 바꿔 달라고 하는 사람. 다른 지점에서 산 물건을 우리 매장으로 가지고 와서 환불해 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치욕은 역사책만의 고유명사가 아닌 게 분명했다. 아르바이트하며 언제나 자본주의 미소를 보이며 고객을 응대했다. 대기업 아래서 있는 가맹점주는 본사의 항의에 쥐약이었으니까. 먹고살기 위해서는 버텨야 했다. 하루 이틀 그 찌꺼기가 몸과 마음에 쌓여 회복 탄력성이 떨어졌다. 집에 돌아갈 때면 미간을 찡그린 채 사화 탓 정치 탓을 하는 불량 감자가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넌 어떻게 밖에만 나갔다 들어오면 죽을상이냐?”

“아르바이트하는데 진상이 너무 많았어요.”

유독 지치고 힘든 토요일이었다. 새벽 6시부터 매장 오픈을 준비했다. 배달차가 늦어서 빵 진열이 늦어졌다. 터미널 지점에서 산 커피에 벌레가 들어갔다며 우리 매장에 와서 환불을 요구했다. 진상 고객에게 몸도 마음도 지친 날. 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붙잡고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자 그는 미간을 구기며 내게 말했다.

“일하고 받은 스트레스는 알아서 풀고 와야지, 넌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냐?”

“죄송해요. 앞으로는 이런 말 하지 않을게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르는 그에게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 인터넷 신문 기사만 보는 아버지와 할 말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슬퍼도 웃었고 우울해도 웃었고 화가 나도 웃었다. 마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밤. 벤치에 앉아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공원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해도 퉁퉁 부은 눈은 숨길 수 없었다.     


매주 주말이 가까워지면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주 반찬하고 국 뭐 할까요?”

“네가 알아서 해라.”

통장 잔고를 보자 답답해졌다.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려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쌀도 사야 하고 수도 전기 가스비도 내야 하는데 여윳돈은 만 원 남짓. 시장 채소가게에서 오천 원을 주고 콩나물, 아욱, 애호박, 양파, 팽이버섯을 샀다. 조심스럽게 생선가게에 갔다. 좌판 위에는 내가 꿈도 못 꿀 화려한 물고기들이 누워있었다. 숯불에 고등어 꽁치 삼치를 구워 밥 위에 올려 먹는 상상을 하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자꾸만 생선으로 향하는 고개를 돌려 국자가 담겨있는 빨간 바구니에 깐 바지락을 봤다. 종이상자 날개를 찢어 매직으로 적어놓은 가격표에는 1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생선가게 아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불러서 물어봤다.

“혹시 깐 바지락살 사천 원어치 가능할까요?”

“사천 원? 오천 원이 아니고?”

아주머니는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더니 덜어내려 했던 바지락 살을 그대로 봉지에 넣어 주셨다. 급히 돈을 건네고 꾸벅 인사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욱과 바지락을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팽이버섯과 양파를 썰어 버섯 전을 부쳤다. 냉동실에 있던 새우젓을 넣어 애호박을 볶았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은 반만 삶아 무쳤다. 남은 건 며칠 후에 신김치를 넣어 국을 끓일 생각이었다. 일주일 먹을 반찬과 국 준비가 끝났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또 된장국이야? 질리지도 않니?”

“다음 주에 아르바이트비 받으니까 호주산 냉동 부챗살 사다가 소불고기 해 먹어요. 아버지 좋아하는 바지락살 많이 넣어서 국물 시원하니까. 어서 드세요.”

고개를 들어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 후루룩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목이 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두 손으로 국그릇 들어 국물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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