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찾는 일을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시작했다.
실천으로의 여부와 상관없이 통렬한 자기반성, 현실인식, 도전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 갖다 붙이는 일들까지..
물론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근사한 결론은 내놓을 수 없다. 그저 자아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황을 허락할 나이도 상황도 위치도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히 안다.
대부분을 걱정과 고민들이 지배했던 부정적인 사고로 살아온 날들이 축적되다 보니 진로, 직장, 가정, 육아 등 거의 모든 필드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임하기 어려웠다.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으나 대비하진 못했다. 그저 걱정에 오래 머물며 때론 상상,허상에 매몰되어 감정을 소비할 뿐. 대부분의 생각과 혼잣말 속에도 그것들은 녹아 있었다.
십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나를 바라봤던 남편으로부터 "일부러 스스로 화날 거리를 찾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왜 사고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나름대로 덜 실망하고 덜 상처받기 위한 방책이다. 그것은 곧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자만하는 건 아닌지, 나에게 만큼은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조차 희희낙락이란 의미로 변질되었다. 무언가가 잘될 거라고 먼저 생각해 버리는 것. 그런 사고의 패턴은 오히려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종교에 의지해 열심히 기도 해보고, 젊은 친구들에게도 유행한다는 필사와 비슷한 경전 사경도 하며 조금씩 짧은 안정이나마 찾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 늘어갈 때 즈음, 다시금 구덩이에 무방비로 떨어진 것 같은 무기력하고 두려운 생각에 매몰되는 일들이 곧잘 생겼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나와 같은 생각,사고,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여리여리한 아들이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입 밖으로 내고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실현가능성이 0.001%도 되지 않는 것들. 그런것들을 꽤나 오래 고민했다. 그도 모자라 남편을 닮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첫째 딸 조차 나의 훈계, 위압적 말투를 답습하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푸념하는 듯한 목소리로 동생의 행동을 중단시키는 것까지.
내 모습을 아이를 통해 지켜보자니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울치료 중에서도 가장 수위가 높은 건 자식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그 마저도 치료가 되어야 다행인 것이련만.
십년전 첫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마취가 풀리자마자 남편에게 건냈던 말이 있다.
"오빠 닮았어?"
임신 중에도 늘 아이들이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랐다. 오죽하면 그 바람이 내 기도의 대부분이었다. 특히 성격과 사고방식 만큼은 날 닮아선 안 될 일이었다. 성격이 완전히 개조된다면 그때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는 꼭 남편처럼 단단하고 바른 사람이기를. 이런 사고로 산다는 게 얼마나 불행할지 너무도 잘 알았기에. 알아도 고쳐기 쉽지 않음을 알기에.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내 성격을 닮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마취가 완전히 풀리기 전이여서인지 그런 말들로 표현이 되었다.
이후에도 적지 않은 횟수의 마취를 할 때마다 마취가 풀려 정신을 온전히 차려보면 혼자서 중얼중얼 내뱉거나 꼭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매번을.
" 내가 지켜줄게,"라던지 "나 아파요."라며 엉엉울거나. 아프다는게 마음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반면 아이들은 엄마를 닮고 아빠를 닮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엄마로부터 "ㅇㅇ아 사랑해!"라는 말을 잠들기 전 매일 듣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말갛고 하얀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표정조차도 늘 웃어야지, 평온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때를.
허나 나는 현재 아이의 대부분의 소소한 부탁을 온 몸으로 거절하고 있다.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내 진로를 위한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자격증 공부도 해야 하고 자격증을 땄으니 급수를 올리려 또 공부해야 하고, 프로그램 신청도 해야 하고 실습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50~ 60대가 되었을 때는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 보며 견디고 버틴다.
9to6의 삶으로 13년을 살면서 승진하고, 연봉이란 개념으로 내 가치를 셈했던 근로소득세의 삶에서 종합소득세의 삶으로 바뀌게 된 나를 남편과 웃으며 이야기 해보기도 한다. 여전히 해야 할 일에 아이에 대한 건 없다. 적어도 우선이지 못하다. 내 진로에 왜 아이가 우선일 수 없을까? 아니, 단 한 번도 우선인 적이 있긴 했는가? 무언가로부터 회피해야 하는 순간에서야 가장 첫 번째 사유로 들이댄 것이 아이들이었을지 모른다. 과연 나는 당당한 엄마일까?
나아갈 진, 길 로.
내가 나아가는 길에 아이는 없는가? 그냥 과제일 뿐인가? 내 새끼를 위해 내 목숨 버릴 수 있지만 삶에서의 사사로운 선택에서 만큼은 내가 우선 이어야 하는 이 모순된 감정은 무엇일까? 날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누구보다 똑 닮아버린 아들을 보며 느낀다.
큰 죄책감이 들어 최근에서야 다정한 말과 함께아이와 조금이라도 일상을 함께 하려 한다. 이제사.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했다. 아주 대단한 결심으로 모두의 마블을 선심쓰듯 해나간다. 규칙하나 어길때마다 나 안해를 연발하며 아이의 마음을 후벼파는 엄마로. 마치 쌓인 스케쥴 쳐내듯 대단한 것 마냥 말하는 내가 싫다. 최근에 하교 후 우연히 아빠와 엄마가 둘 다 집에 있는 날이면 아이는 말했다.
"나 오늘이 너무 행복해서 빨리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
순간 내 귀를 의심했고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또 아들은 게임에 져서 눈물을 흘리기보다 게임에 져서 더 오래 엄마와 놀 수 없음이 슬퍼서 우는 그런 아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해 할 줄 아이였구나.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마저 금방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하게 만들었구나.
더 어린 시절 아이가 욕조안에서 몸을 담그는 동안 화장실 문앞에 앉아 같이 놀아달라고 한 부탁이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거실에 나가 아이 장난감 앞에 앉아만 있어도 될 것을 피곤하단 이유로 혼자 놀라고 말했던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것인가? 그래서 내가 얻고자 하는 건 얻었는가? 친구에게 말 거는 것조차 수줍어하고 창피해하고 먼저 지레짐작하여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하고 마는 아들을 보며 이내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여덟 살이니 괜찮다며 위안한다. 서른아홉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기보다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빠르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아이는 행복을 나보다 빨리찾을 줄 아는 아이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나와 가장 많이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사고로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