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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서 Mar 30. 2024

‘치킨 뼈’에서 공룡을 찾다

비문학 리뷰 | 모리구치 미쓰루, 《하루 한 권, 공룡학》

모리구치 미쓰루 지음 | 정혜원 옮김 | 드루 펴냄




공룡은 어린이들의 우상


우리 오빠는 서너 살 무렵 공룡에 미쳐 있었다. 공룡 도감을 줄줄 외고, <쥬라기 공원>을 몇 번이고 시청하고, 엄마에게는 끊임없이 공룡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엄마는 공룡 얘기를 듣고 그리고를 반복하다가 공룡에 완전히 질려 실제로 구토까지 나왔다고. 거기다 더해 그때 오빠는 장래 희망이 티라노사우루스였단다. 시간과 종을 뛰어넘는 비범한 장래 희망이다.


공룡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우리 오빠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어린이가 공룡을 좋아한다. 나는 작년에 혼자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기차에서 내 옆에 앉았던 한 어린이도 커다란 공룡 모형으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공룡이 참 멋지다고 말을 거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이 사준 거라고 한껏 들떠 자랑했다. 그 의기양양한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하고 밝아서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공룡을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런데 어린이들의 공룡에 대한 이런 관심이 여든까지 가는 경우는 썩 많지 않은 듯하다. 일단 내 주변에는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장래 희망이 티라노사우루스였던 오빠도 지금은 어린 시절의 향수 같은 호감이 남아있을 뿐 공룡에 대해 그리 잘 알진 못한다.


공룡은 수천 년 전에 멸종했다. 호랑이나 판다처럼 인간과 동시대에 존재하는 야생동물도 보기 어려운 판국에 공룡이라니. 현대의 시점에서 공룡은 환상 속의 동물처럼 느껴진다. 그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어릴 적 공룡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면서 공룡이 점점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거 공룡이에요?’


《하루 한 권, 공룡학》의 저자 모리구치 미쓰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는 생물을 직접 관찰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꿨고, 일본의 자유숲 중고등학교 및 NPO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등 학생들과 직접 자연을 경험하며 생물학을 가르쳤다. 그는 동물의 사체로부터 직접 뼈 표본을 만들 정도로 동물의 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뼈는 그야말로 ‘진짜 자연’이라고 말한다.


뼈에는 그 동물이 걸어온 진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뼈를 보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주 뼈를 학교에 가져가곤 했다. 학생들과 직접 동물의 뼈를 탐색하며 뼈에 새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하루는 박물관에 듀공 뼈가 전시되어 있다는 소식에 학생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듀공의 뼈와 함께 보여줄 요량으로 소지 중인 뼈를 이것저것 챙겼다. 


바다 동물 뼈를 보여주기에 앞서, 일단은 모두가 잘 알 만한 동물의 뼈로 이야기를 열기 위해 그는 너구리의 머리뼈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어떤 동물의 뼈인지 맞혀 보라는 그의 말에 아이들은 다양한 동물들의 이름을 댔는데, 무척 활달했던 학생 한 명이 범상치 않은 답을 내놓았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공룡’이었다. 


처음 학생들이 나름 신선한(?) 현대 동물의 뼈를 보고 이미 옛날 옛적 멸종한 공룡을 외칠 때는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그도 새삼 ‘공룡’이란 동물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는 자신이 수많은 종의 동물에 관심을 두었음에도 유독 공룡에 대해선 아는 바가 별로 없음을 깨달았다. 그도 어린 시절엔 공룡을 좋아했는데도 말이다.


탐구심이 솟아올라 도서관에서 공룡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보던 중 그는 자신이 공룡으로부터 멀어진 까닭을 찾아냈다. 공룡의 뼈는 ‘비쌌다.’ 공룡의 뼈를 직접 손에 쥐고 만져보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의 마음속에서 공룡은 ‘가상의 생물’이 되어버렸다.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위한 공룡’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문득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새는 공룡의 직계 자손’이라는 것.


앞서 동물의 뼈에는 본연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논한 바 있다. 그렇다면 새의 뼈에도 공룡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러한 아이디어로부터 이 책이 탄생했다.     






치킨 뼈와 공룡의 상관관계


‘가난한 자의 공룡’을 찾겠다고 결심한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닭의 뼈였다. 닭은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골에서는 닭 키우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고, 우리의 식탁에는 닭요리가 자주 올라오곤 한다. 저자는 지인의 요청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된 의문의 뼈가 대체 어떤 동물의 것인지 추적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새 표본에 대조해 보다가 의외로 자신에게 닭 뼈 표본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닭 사체를 구해 살점을 떼어내고 다듬어 닭 뼈 표본을 만든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새 중 하나인 닭의 뼈를 유심히 보다가 그는 닭이 ‘가난한 자의 공룡’이 될 수 있겠단 생각에 고무된다.


여기서 하나 질문. 여러분은 닭에게 손가락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없었다. 내가 닭에 대해 아는 건 그들이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방식들뿐이었다. 치킨을 먹을 때만큼 닭의 구조가 어떠한지 신경 쓸 일이 없다. 머리와 목이 있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주식으로 사용되는 가슴,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쟁탈전의 대상이 되는 다리, 날개가 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안다. 닭똥집으로 불리는 모래주머니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닭발도 안다. 그런데 손가락이 있다니! 그런 건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각설하고, 저자는 닭의 손가락뼈 개수에 주의를 기울인다. 닭은 손가락이 날개에 달려있다. 날개의 끝 뾰족한 부분에 손가락이 있다. 그럼 닭의 손가락은 몇 개일까? 정답은 세 개.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다섯 개인 것이 보통인 인간과는 다르다. 


저자는 진화사적 관점에서 이 손가락 개수의 의미를 설명한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과 새의 공통 조상인 3억 1,000만 년 전의 파충류는 손·발가락이 다섯 개로 고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화 과정에서 그들의 생존 방식에 따라 개수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돼지의 발가락은 네 개, 소는 두 개다. 필요 없는 손·발가락은 퇴화하여 사라진다. 그는 이를 통해 닭의 손가락도 원래 다섯 개였다가 세 개로 줄어들었다고 추측한다.

그는 닭의 손·발가락 개수와 공룡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아낸다. 공룡의 설명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앞발의 약지와 소지가 퇴화하거나 사라져서 나머지 세 개의 발가락만 기능한다.’ 공룡의 직계 자손으로 알려진 새의 날개에 달린 손가락이 세 개인 이유가 공룡의 앞발에 달린 발가락이 세 개였기 때문은 아닐까? 이외에도 그는 세부적인 공통점들을 찾아낸다. 닭과 공룡 모두 발가락이 네 개에, 마디 수도 같았다는 것!  

    

그래서 정말 닭은 ‘가난한 자의 공룡’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닭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새의 뼈를 관찰하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글의 분량도 적은 편이고, 과학적 이해를 돕는 귀여운 삽화가 한 페이지 건너 계속 삽입되어 있다. 과학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나도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공룡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24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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