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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서 Jul 04. 2023

1. 어쩔 무직백수

내 정체성이 무직백수래요.


지난 6월부터 만 나이가 적용됐다. 나는 사회적으론 두 살이 어려졌고, 연 나이로 따지자면 한 살이 어려졌다. 그렇다. 나는 빠른년생이었던 것이다.


한 살이 어려졌든 두 살이 어려졌든 어려지지 않았든, 어쨌거나 나는 20대 중후반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자격증이나 고시 공부를 하지 않는 4년제 대학 졸업생은 대부분 일하고 있을 나이대다. (심지어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도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후자다. 학생이란 정체성도 직장인이란 정체성도 고시생 혹은 수험생이라는 정체성도 가지지 않고 저어기 어딘가를 부유하는 무직백수다.


내가 무직백수가 된 사연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한 지 9개월여 만에 나가떨어졌다. 공황장애가 심해졌고 번아웃이 왔다. 내 정신과 육체는 너덜거렸다.


약 9개월간의 직장생활이 끔찍했던 탓이 아니다. 직장생활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스무 해가 넘도록 쌓여온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모여 폭발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소진됐고, 정신이 찢김과 동시에 신체에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퇴사를 고사했으나 결국엔 사직서를 쓰게 됐다. 일을 못할 지경이 됐으니까. 그걸 넘어서 생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기로에 놓였다. 신체적인 문제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컸다. 둘은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때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회사를 관둔 게 지난 9월쯤이니, 벌써 일 년이 넘게 나는 무직백수 신분을 유지 중이다. 다행히 나는 다양한 정신·신체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데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였고, 치료에 전념했다. 그 결과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가던 작년 이맘때에 비해서는 훨씬 건강해졌다. 아파서 말라갔던 몸에도 조금씩 살이 붙었고, 덜 죽고 싶고 더 잘 먹게 됐다.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전자기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듯 그렇게 픽, 꺼져버렸던 내 삶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제 노력하면 오늘 모든 게 해결되는 그런 달콤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불은 희미하고 빨간색과 연두색 사이 어중간한 주황색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서 말하곤 하는 '1인분'은 못 한다.


당연히 불안하다. 일하지 않아 수입은 없는데 병원비는 놀랄 만큼 손쉽게 자주 많이 빠져나가니 재정적 부담이 크다. 다 커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빌어먹는다는 자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인분 못 한다는 말을 누가 내게 한 건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 자라온 내 가슴엔 이미 아릴 정도로 깊숙이 박혀 있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자아는 얼마나 불안정한가. 내 나이를 들으면 나보다 연상인 사람들은 '아직 어린데 뭐~'라고들 하지만 또 어디 가면 '이제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라고 한다. 나는 어린가, 어리지 않은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리기도 어리지 않기도 한 내 나이쯤 되면, 사회에서 용인하는 명찰이 몇 개쯤 있다. '직장인'이 그중 최고일 것이고, '수험생'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명분이 생긴다. '취업 준비생'도 살아남는다. 실업난은 오래간 지속되어 왔다. 중요한 건 내가 이 명찰 중 아무것도 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체성 없이 표류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죽을병엔 안 걸렸지만 아프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직장인'도 '수험생'도 '취업 준비생'도 내가 달기에는 너무 무거운 명찰이다. 빈 명찰은 구토가 나올 만치 부끄럽고 마치 내가 사회에 기생하는 질 나쁜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살아간다. 나는 죽지 않기를 택했고 죽지 않기 위한 길을 걸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나의 노력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나만의 정체성을 취하고 더 뻔뻔하게 살기로 한다. 빈 명찰에 '무직백수'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을 써넣는다.


세상 사람들아, 내 정체성이 무직백수래요!


무직백수라는 타이틀을 찾아낸 뒤로는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무직백수로 살고 있다고 답한다. 내가 무직백수라는데 뭐 어쩔 건데. 치기 어린 태도로 나를 무장한다. 그리고 이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갑옷은 실제 그대로이기에 어디 흠잡을 구석이 없다. 그래요. 내가 바로 무직백수랍니다.


우리네 사회가 아픈 사람도 울타리 안에 포용하는 다정한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대와 슬픔 속에서 나는 다정함을 찾기 위해 더 공격적인 방식을 채택하기로 한다. 나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무직백수인데요, 노동력이 없음에도 여전히 이 사회의 일원이에요. 내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당신들이 다정해지면 좋겠어요. 그럼 내가 아프지 않고 당신들이 아플 때에 내가 더 다정해질게요. 나도 언제나 다정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어떤 모양이든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서로 함께이니, 더 사랑하고 다정해져야 하지 않겠어요.


일상 블로그 쓰기에 몇 번이고 실패했던 경험이 있지만, 다시 또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으라차차 무직백수 생활기를 시작한다.


으라차차 '대학원 입시생' 생활기가 되는 그날까지. 세상의 모든 무직백수와 다양한 존재를 응원합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강하기에. 우리네 인생 파이팅입니다. 요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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