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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 여경 Nov 11. 2022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나겠다는 달콤한 착각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현대인은 외부와의 접속을 잃어버린 대신, 내면 혹은 자의식의 방을 만들어 버렸다.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이웃도, 친구도, 세상도 망각해 버렸다.


그러면서 외롭다고 상처받았다고 한탄해 대고, 그러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타자를 증오한다.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원천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이 자기만의 방에서 탈출할 것인가? 현대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절실한 화두는 없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전평론가 고미숙 저-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너무 공감가는 구절을 만나 옮겨본다. 문장들을 거울 삼아 나 자신을 돌아본다. 실은 뼈아픈 구절이라 외면하고 싶지만, 내 안에 자기방어 본능을 싹트게 하는 구절일수록 반드시 직면해야 되는 구절이라 믿는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관계 속에서 받을 상처가 싫어서

무서워 사람들 무리에서 도망치고 싶은가?

아니면 조직생활이 정말 안 맞는 사람인건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한동안 나는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겠다며 내 자신에게 오랜시간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꿀맛같았다. 거의 일 년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매일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행복한가?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이 때의 시간이 내게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나를 찾겠다는 명분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며 나에게 갇히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뭐든 균형이 중요한 법인데 고민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엇 하나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두려움이 생기는 법이다. 나랑 맞는지 아닌지 생각만 해보면 어찌 알까? 아니 애초에 지금의 나를 하나의 틀에 완전히 끼워맞춘다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사람은 계속 변한다. 생각도 가치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생각의 재료로 쓰일 과거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앞으로 경험하면서 또 데이터를 쌓아가며 고민해보아도 되는 일이 아닌가.



멈춰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멈춤과 비움고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몸이 아프면 지쳐있다면 쉬어가야 한다.

다만 나를 알아간다는 말 뒤에 숨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직면해봐야 한다.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

-


물론 방 안을 벗어나는 일은 너무 싫고 두렵다.

자신이 굳게 믿고 걷던 길에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은 더욱 나를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은 절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한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도 그 계획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분명 생긴다. 그럴 때 자신에게 갇혀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나타난다.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쉽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인생은 늘 불공평합니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을 누군가에게 따져물을 수 있는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사실은 말이죠, 인생에서 많은 것들은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때보다 가치있게 보상됩니다.
-2016 미국배우 매슈 매코너헤이의 휴스턴 대학 졸업식 축사 중


그의 말처럼 인생이란 쉽지 않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좋은 대학, 꿈꾸던 직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잡동사니 수준의 영상물로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가 있고, 놀라울 만큼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도 알려지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그 때문에 삶이 불행하다고 할 수도 없다. <출처: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어

전체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아, 뭐야! 대체 날 방해하는 게 왜 이리 많아?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리 가혹해?” 라고 말한다.


실은 내가 그랬다.

퇴사하고 나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이제 나답게 좀 살아보려는데 갑자기 방해물들이 나타났다.(아니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코로나도 터지고 평생의 소원이었던 유럽여행은 직전에 허사가 되고, 갑자기 막막하기도 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족은 직장을 잃고.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니 사기를 당할 뻔하고.


되는 일이 없다며 잠시 내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읽었던 책들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간 인물들의 패턴을 보니

그들은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고했다는 걸

깨달았다.


순탄한 삶이 나에게만 보장되어야 한다는 헛된 생각 자체를 버리고, 인생이 순탄하진 않을지라도, 나 스스로가 능히 앞으로의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즉,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타인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주로 의지적으로 알아채지 않으면

나의 사고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다.


가령 관공서에서 빠른 일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체 왜 일을 이렇게 느리게 하는 거야? 내가 신청한 지가 언제인데. 공무원들은 쯧쯧.“ 이라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그 담당직원은 그 전날 나의 것을 포함한 100개가 넘는 신청서를 전산에 입력하고 야근을 한 후 집에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법적 처리기한이 정확히 안 지켜진다면 문제겠지만 대개 불평하여 민원을 넣는 이들 중 상당수는 처리기한에 대한 고지에 관심이 없었다)




반복하며 결론을 맺는다.

자신에 대한 탐구를 위해

혹은 일상의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휴식을 가지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한 여행을 하고

그 모든 일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도피가 되어선 안 된다.

아니 안 된다는 표현은 틀렸다.

도피도 해보면 느끼는 바가 있는 좋은 경험이지만

습관적인 도피는 곤란하다.


내 자의식이라는 방에 갇혀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이웃도, 친구도, 세상도 망각해 버려서는 안 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주변과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내가 이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

더 깊이 있는 답을 알아가기도 하니까.


웅크린 채 내 안에 갇혀 있느라

괜히 나를 피해자라 여기며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경영하는 데 다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건 아닌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내 글에서 자주 책임을 강조하는 건,

그것이 결국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임진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더 나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뚜렷해지기도 한다.

몸이 편하다고 해서 착각하는 게 있다.

회피하느라 낭비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더 크다는 거. 그리고 소리소문없이 우리의 마음을 부정적인 에너지로 잠식해버린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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