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망하지 않았다
상담일지 #2
상담실에 앉은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
"제가 바보 같죠?"
"다 제 탓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겠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속에는 스스로를 미워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 숨어 있었다.
"사업도 제가 몰라서 망했고,
결혼도 제가 잘못 선택해서 그런 거고,
사람들한테도 속은 게…
결국은 제가 허술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녀는 '내가 틀렸으니까'라는 전제 아래
모든 것을 스스로 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 누군가라도 “당신 잘못 아니에요”라고 말해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 모든 걸 본인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오랜 시간 아프게 살아오셨어요.”
“당신은 애썼고,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떨렸다.
눈물인지, 한숨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흘렀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고장을 자신의 결함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때때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된 무기이기도 하다.
“나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면
누굴 미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세상을 탓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 무기는
언젠가 자신을 찌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녀의 오래된 무기를
조금 내려놓자고 말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에피소드는
자기 비난과 수치심에 갇혀 있던
한 여성의 내면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혹시 그런 ‘나만의 탓’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오늘만큼은
조금 가볍게 말해보자.
“내가 전부 잘못한 건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껴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