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망하지 않았다
상담일지 #Episode 2.
“망한 건 나잖아요. 제가 문제예요.”
그녀는 처음부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요…
망한 건, 제가 잘못해서예요.”
나는 말없이 물 한 잔을 건넸다.
그녀는 잔을 두 손으로 받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숨에는 참 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다.
“사람 탓하는 것도 이제 지쳤고요.
다 제가 무능해서 그런 거예요.
애초에 안 되는 사람이었던 거죠.”
나는 그 말에서 익숙한 감정을 읽었다.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그 안에는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존심을 방패 삼아
‘나 때문’이라는 가면을 쓴다.
그렇게라도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한다.
“혹시요,”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누구한테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눈을 깜빡이며 내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어요. 그런 말, 아무도 안 해줬어요.”
“왜요?”
“…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데…”
그녀는 사업을 시작했었다.
10년 넘게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더 큰 꿈을 꾸며 회사를 세웠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응원보다 의심이 많았다.
“너 같은 애가 뭘 한다고?”
“애들 교육이나 시키고, 롤러나 다니지
왜 이상한 데 돈을 써?”
“말렸는데도 하더니 결국 망했네.”
그녀는 ‘망했다’는 말보다 ‘말렸는데 왜 했냐’는 말이 더 아팠다고 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그녀는 눈물과 함께 물었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때 당신이 한 선택은,
‘시도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였어요.
당신은 실패한 게 아니에요.
그저… 아직 끝까지 가보지 못한 것뿐이에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울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내담자들이 실패보다 더 두려워하는 건 '비난받을까 봐',
그리고 '실패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낙인'이다.
그러나 상담자는 안다.
가장 깊은 자책 속에 숨어 있는 건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을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상담 사례를 각색한 픽션입니다.
다음 화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이미 절반의 치유가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