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망하지 않았다.
상담일지 # 11.
“살고는 있어요. 그냥… 살아지는 거죠.”
그녀는 50대 후반.
더 이상 누가 묻지 않아도 아침에 눈을 떠야 하고,
하루의 시작을 ‘해야 하니까’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분명 꿈도 있었고, 활기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어요.
아이도 길러냈고, 일도 했고, 어떤 순간엔 누구보다 강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열망도 없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만이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누가 나한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면 대답이 참 곤란해요.
할 말이 없거든요.
그냥… 살아있긴 해요.”
무기력한 삶의 한가운데
그녀는 몸은 아프지 않아요.
경제적으로도 아주 곤란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의욕이 없고,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친구를 만나도 흥이 나지 않고,
영화를 봐도 감정이 동하지 않고,
명절이 와도 ‘기다림’이 없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지금 나답지 않아요.
근데 이게 너무 오래됐어요.
이제는 이게 그냥 나인가 싶어요.”
그녀는 병원에도 가봤고, 약도 타봤지만, 이 감정이 ‘병’이라기보단 그냥 내 삶이 돼버렸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합니다.
“이 나이에 뭘 더 바라겠어.”
“지금 살아있는 것도 다행이지.”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봐.”
이런 자기 비난이 더 큰 무기력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말해줍니다.
“당신은 잘 살아내고 있어요.”
“숨 쉬는 것, 일어나는 것, 오늘 하루를 끝내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생존의 기술이에요.”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요
세상에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고, 성공하고 극복하고 성장하는 콘텐츠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 사이에서 그냥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이 무기력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
그리고, 이런 시기를 그저 버티는 것도 충분히 용기라는 말
이 에피소드는, "아무도 몰라도,
나는 오늘 하루를 잘 견뎠다"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