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었던 것들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정혜영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던 것들


상담실 기록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서른한 살 김하은 씨였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있어요."

하은 씨는 휴대폰에서 녹음 파일을 보여줬습니다.

"이게 증거예요."

"팀장님 목소리가 녹음돼 있어요."

하은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삼 년 전에 입사했어요. 중견 제조업체예요."

"처음에는 괜찮았어요. 팀장님도 친절하셨고요."

"하지만 일 년쯤 지나면서 이상해졌어요."

하은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제 옆에 앉으세요."

"'하은 씨 오늘 예쁘네. 화장 진했어?'라고 해요."

"'다리 좀 봐봐. 치마 짧은 거 입으니까 좋네'라고도 했어요."

하은 씨는 손을 떨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냥 웃고 넘겼어요."

"하지만 계속됐어요. 매 번요."


하은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일 년 반쯤 됐을 때부터 신체 접촉이 시작됐어요."

"서류 전달하면 손을 잡으세요."

"'수고했어' 하면서 어깨를 만지고요."

"뒤에서 다가와서 허리에 손을 대기도 해요."

하은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처음에는 실수인 줄 알았어요."

"좁은 사무실이니까 스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너무 자주였어요."

하은 씨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한 번은 회의실에서 둘이 있었어요."

"팀장님이 제 뒤에 서서 어깨를 주무르는 거예요."

"'하은 씨 어깨 많이 뭉쳤네. 내가 풀어줄까?'라고요."

"저는 몸을 피했어요. '괜찮습니다'라고 했고요."

"하지만 팀장님은 웃으면서 '왜 그래. 부담 갖지 마'라고 했어요."



하은 씨는 회식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회식해요."

"저는 회식이 제일 무서워요."

하은 씨는 사진을 가리켰습니다.

"팀장님이 제 옆에 앉으라고 해요."

"'막내가 팀장 옆에 앉아야지'라고요."

"술을 따르라고 시켜요. 계속요."

하은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하은이는 술 따르는 게 예쁘네'라고 해요."

"'여자가 이래야 남자들이 좋아해'라고도 하고요."

"다른 남자 팀원들은 웃어요."

"아무도 말리지 않아요."

하은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번은 팀장님이 제 허벅지에 손을 올렸어요."

"술자리에서요. 사람들 있는데요."

"저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어요."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하은 씨는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동료한테 말했어요. 여자 선배한테요."

"'팀장님이 자꾸 이러시는데 어떡하죠'라고요."

하은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배가 말했어요."

"'하은아 팀장님 원래 그래. 나쁜 뜻은 없어.'"

"'그냥 좀 친근한 스타일이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하은 씨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예민한 게 아니에요."

"명백한 성희롱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제 편이 아니었어요."

하은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자 동료한테도 말해봤어요."

"'너 오해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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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멈추지 않고 무너진 문장을 다시쓰는 네오 크리에이터(Neo-Creator) 리라이프작가(Re-Life)정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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