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정혜영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상담실 기록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쉰여섯 살 박철수 씨였습니다.

그는 면도를 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의뢰받고 왔습니다."

철수 씨는 복지사가 써준 상담 의뢰서를 내밀었습니다.

"복지사님이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철수 씨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삼 개월 전에 복지관에 갔어요."

"그전까지는 일 년 동안 길에서 잤습니다."

"지하철역, 공원 벤치에서요."

철수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복지사님이 도와주셨어요."

"쉼터에 자리를 만들어주셨고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승인 기다리는 중이에요."

철수 씨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상황이 나아졌어요. 객관적으로는 요."

"하지만... 마음이 힘듭니다."



철수 씨는 낡은 지갑에서 사진을 꺼냈습니다.

"삼 년 전 사진이에요."

사진 속에는 치킨집 앞에서 웃고 있는 철수 씨가 보였습니다.

"이십 년 동안 치킨집 했어요."

"장사가 잘됐어요. 가게를 두 개까지 냈었어요."

"직원도 다섯 명 뒀고요."

철수 씨는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딸이 둘 있었어요."

"큰딸은 스물여덟, 작은딸은 스물다섯이었어요."

"둘 다 결혼시켰어요. 제 돈으로요."

"아내랑도 괜찮게 살았고요."

철수 씨는 사진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철수 씨는 폐업 신고서를 꺼냈습니다.

"삼 년 전에 망했어요."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주변에 생겼어요."

"손님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철수 씨는 서류를 펼쳤습니다.

"가게 두 개 중 하나를 먼저 닫았어요."

"하지만 남은 가게도 적자였어요."

"빚이 쌓였습니다. 팔천만 원까지요."

"결국 그것도 문 닫았어요."

철수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이십 년 일군 게 일 년 만에 무너졌어요."

"빚만 팔천만 원 남았고요."



철수 씨는 이혼 판결문을 꺼냈습니다.

"가게 망하고 육 개월 후에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어요."

"'더 이상 못 살겠어. 당신 때문에 우리가 고생해.'"

철수 씨는 서류를 내려놓았습니다.

"딸들도 저를 원망했어요."

"'아빠 왜 이렇게 됐어. 친구들한테 창피해.'"

"큰딸 남편이 말했대요."

"'장인어른 때문에 우리까지 빚 떠안는 거 아니냐'고요."

철수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혼했습니다."

"아내는 큰딸 집으로 갔어요."

"저는 혼자 남았고요."

"딸들은 연락을 끊었어요."

"전화해도 안 받았어요."



철수 씨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처음에는 쪽방에서 살았어요."

"일용직 아르바이트하면서 근근이 버텼죠."

"하지만 일이 없는 날이 많았어요."

"월세를 밀렸고 쫓겨났어요."

철수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고시원, 찜질방, 그러다가 결국 노숙이었어요."

"일 년 동안 지하철역에서 잤어요."

"겨울에는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

"여름에는 모기에 물려서 온몸이 부었고요."

철수 씨는 손을 떨었습니다.

"무료 급식소를 찾아다녔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졌어요."

"안 먹으면 죽으니까요."




"삼 개월 전에 복지사님을 만났어요."

"서울역 근처에서요."

"복지사님이 다가오셨어요."

"'어르신 여기서 주무세요? 복지관 가시겠어요?'"

철수 씨는 명함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괜찮습니다.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요."

"하지만 복지사님이 계속 오셨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오셔서 물어보셨어요."

철수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그냥 따라갔어요."

"복지관이었어요."

"따뜻한 밥을 주셨어요."

"씻을 수 있게 해 주셨고요."

"그날 울었어요. 일 년 만에 처음으로요."



철수 씨는 쉼터 이용증을 보여줬습니다.

"지금은 복지관 쉼터에서 자고 있어요."

"이층 침대지만 제 침대가 있어요."

"매일 씻을 수 있고요."

"밥도 세끼 먹어요."

철수 씨는 서류를 꺼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했어요."

"승인되면 한 달에 육십만 원 정도 받는대요."

"LH 임대주택도 신청했고요."

"일 년 정도 기다려야 한대요."

철수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복지사님이 일자리도 알아봐 주세요."

"노인 일자리 사업이 있대요."

"한 달에 오십만 원 정도 받는 거요."

"다음 달부터 시작할 수 있대요."



철수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객관적으로는 나아졌어요."

"노숙에서 쉼터로 왔고요."

"기초수급받게 됐고요."

"일자리도 생기고요."

철수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안 따라와요."

"거울을 보면 실패자가 보여요."

"쉰여섯에 쉼터에서 자는 노숙자요."

철수 씨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삼 년 전에는 치킨집 사장이었어요."

"직원 다섯 명 거느리고 가게 두 개 운영했어요."

"지금은 기초수급자예요."

"한 달에 육십만 원 받아서 사는 거지예요."



철수 씨는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딸들 생각이 나요. 매일요."

"전화하고 싶어요."

"'나 아빠야. 이제 좀 나아졌어. 쉼터에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철수 씨는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못 해요."

"일 년 전에 전화했을 때 거절당했거든요."

"'아빠 전화하지 마세요. 우리도 바빠요.'"

철수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키운 딸들인데요."

"결혼도 시켜줬는데요."

"이십 년 동안 치킨 튀겨서 번 돈으로요."

"하지만 망하니까 저를 버렸어요."

철수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제가 한심한가 봐요."

"실패한 아버지니까요."



철수 씨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 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쉰여섯인데요."

"노숙자였는데요."

나는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철수 씨, 지금 뭐가 가장 힘드세요."

철수 씨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실패자라는 생각이요."

"쓸모없는 인간 같아요."

"딸들도 저를 부끄러워하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실패자라는 생각이 가장 힘드시군요."

"네... 거울 볼 때마다 그런 생각 들어요."

철수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인 일자리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요."

"한 달에 오십만 원 받는 거예요."

"삼 년 전에는 한 달에 오백만 원 벌었는데요."




나는 철수 씨에게 말했습니다.

"철수 씨, 저는 실질적인 도움은 못 드려요."

"집도, 일자리도, 돈도 줄 수 없어요."

"복지사님이 이미 그런 건 도와주고 계시니까요."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아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철수 씨는 실패자가 아니에요."

철수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실패자예요."

"치킨집 망했고 노숙자 됐잖아요."

나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사업이 망한 거예요. 철수 씨가 망한 게 아니에요."

철수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슨 차이예요."

"큰 차이예요."

나는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철수 씨는 이십 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셨어요."

"딸들 결혼시켰고 가족 먹여 살렸어요."

"프랜차이즈 때문에 망한 거지 철수 씨가 게을러서 망한 게 아니에요."



나는 철수 씨에게 말했습니다.

"삼 개월 전에 철수 씨는 지하철역에서 주무셨어요."

"지금은 쉼터에 계세요."

"한 발짝 나아간 거예요."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맞아요."

"다음 달부터 노인 일자리 시작하세요."

나는 계속 말했습니다.

"또 한 발짝이에요."

"오십만 원이 적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하지만 삼 개월 전에는 0원이었잖아요."

철수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렇긴 해요."

"일 년 후에는 LH 임대주택 들어가실 수도 있어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또 한 발짝이에요."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오백만 원 버는 사장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육십만 원 받으면서 임대주택에서 사는 건 가능해요."

철수 씨는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나는 철수 씨에게 말했습니다.

"철수 씨, 실패자는 포기한 사람이에요."

"철수 씨는 지금 복지관에 오셨어요."

"쉼터에서 주무시고 일자리 준비하세요."

"포기 안 하셨잖아요."

철수 씨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딸들은..."

"딸들이 연락 안 하는 건 딸들 문제예요."

나는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철수 씨가 한심해서가 아니에요."

"딸들이 아버지를 외면하는 거예요."

"그건 딸들이 잘못한 거예요."

철수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제가 망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요."

"맞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망한 건 되돌릴 수 없어요."

"지금부터 어떻게 살지만 선택할 수 있어요."

"실패자로 살 건지, 아니면 다시 일어서는 사람으로 살 건지요."




나의 기록


철수 씨는 상담실을 나갔습니다. 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조금은 등이 펴진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집도 일자리도 돈도 줄 수 없었습니다.

복지사가 이미 해주고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해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요.

철수 씨는 삼 년 만에 모든 걸 잃었습니다.

치킨집, 가족, 집, 자존심 모두요.

일 년을 노숙했습니다.

하지만 삼 개월 전 복지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쉼터에 들어갔고, 기초수급을 신청했고, 일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요.

철수 씨는 다시 오백만 원 버는 사장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육십만 원 받으며 임대주택에서 사는 건 가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노숙이 아니니까요.

철수 씨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창밖으로 저녁 해가 집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노숙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복지관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저 같은 상담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에요. 한 발짝씩 가면 돼요."

철수 씨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천천히지만, 가능합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 02-3672-9073 희망의 집(서울역): 02-3142-9002

다시 서기종합지원센터: 1688-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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