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약을 끊은 사람

사라지는 방식

by 정혜영


사라지는 방식

14 - 약을 끊은 사람



"이번엔... 혼란스러웠어요."

유품정리사 김 대표가 말했다. 빈 집 이야기를 나눈 지 며칠 만이었다.

"혼란스러웠다니요?"

"방이요. 사람이 아니라, 방이."

30대 후반 남성.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발견된 건 3주 후였다.

집주인이 월세 독촉하러 갔다가 발견했다. 3개월째 월세가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

경찰과 함께 문을 열었을 때, 침대 위에 그가 누워 있었다.

김 대표는 그날 오후 현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이상했다고 했다. 원룸이었다. 작은 공간. 하지만 어질러져 있었다.

어질러진 정도가 아니라, 체계 없이 엉망인 느낌이었다고 했다.

거실 바닥에 물건들이 널려있었다. 옷, 책, 휴지, 음식물 용기. 하지만 특이한 게 있었다.

벽에 메모가 빼곡했다. 포스트잇, 종이, 심지어 벽에 직접 쓴 글씨들.

'그들이 듣고 있다' '창문 열지 마. 들어온다' 'TV에서 나를 보고 있다' '약 먹지 마. 독이다'

김 대표는 멈춰 섰다. 망상이었다.

책상을 봤다.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쓴 글이 가득했다.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한 페이지 가득. 다음 페이지에는 또 다른 문장.

'그들이 온다 조심해 그들이 온다 조심해'

역시 가득.

정신질환이 있었던 거였다.

서류를 찾았다. 병원 진료 기록. 정신건강의학과. 10년 전부터 다녔다.

진단명: 조현병. 처방전이 있었다. 항정신병 약. 매일 복용해야 하는.

하지만 약이 그대로 있었다. 3개월 치. 약봉지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개봉도 하지 않은 채로.

3개월 전부터 약을 먹지 않은 것이었다.

왜?

벽에 쓴 글씨를 다시 봤다. '약은 독이다. 그들이 심어놓은.' 약을 먹지 말라는 망상.

약을 끊으면 증상이 재발한다고 했다. 조현병은.

냉장고를 열었다. 거의 비어있었다. 상한 음식 몇 개. 오래된 우유.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 같았다.

쓰레기통에 컵라면 용기 몇 개. 다 오래된. 마지막 몇 주는 거의 먹지 않았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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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멈추지 않고 무너진 문장을 다시쓰는 네오 크리에이터(Neo-Creator) 리라이프작가(Re-Life)정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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