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인간이해 #4>
대학교 시절, 나는 변신 이야기를 교양 과목 수업으로 배웠다.
한 학기 동안 신화 속 인물들이 나무가 되고, 돌이 되고, 별이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수업이 왜 대학의 교양 과목이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야기들은 낯설었고 인물들의 운명은 과장되어 보였다.
욕망을 품었다는 이유로 나무로 변하고,
오만했다는 이유로 거미가 되고,
사랑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돌이 되는 이야기들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상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이 이야기들을 신의 벌이나 도덕적 경고로 읽었다.
“그러지 말라는 뜻이겠지” 정도로 이해했고, 그 이상으로 붙잡히는 말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떠올렸을 때, 이상하게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변신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인물들은 충분히 변해 있었다.
이야기는 다만, 그들이 더 이상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순간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 놓았을 뿐이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그들은 사람처럼 관계 맺고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폴론을 피해 달아나는 다프네는 도망치는 순간 나무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관계를 감당할 수 없는 지점까지 밀려 있었다.
나르키소스는 물가에서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신이 그들을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변신은 이미 안에서 끝난 이야기였다.
변신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 변화가 낯설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현실의 인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욕망이 관계를 잠식하고,
자존이 오만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충분히 달라져 있다.
변신이야기는 그 ‘이미 달라진 상태’를 신화라는 언어로 남겨 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벌을 주기 위해 쓰인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 더 이상 이전의 자신처럼 선택하고 관계 맺을 수 없게 된 순간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이야기는 인간의 모습을 거두고 다른 형상을 건네준다.
그건 벌이 아니라, 이미 끝나버린 상태에 대한 하나의 결말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은 스무 살에는 잘 남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쉽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몇 번의 변신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습은 그대로일지라도,
어떤 관계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고,
어떤 선택 앞에서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변신이야기는 인간이 나무나 돌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있기 어려워지는 순간을 끝까지 밀어붙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신화는 낡은 상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다시 와서 “아, 이 말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닿게 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