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부다페스트에 살았습니다.

EP1. “네가 해외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

by 여울


비행기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믿기 힘들 만큼 파랬고, 나는 그 하늘 위에 온전히 혼자였다. ‘부다페스트’라는 도시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듣고 봤던 낯선 도시였다.


부다페스트행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우연히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한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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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는 엑소의 ‘으르렁’이 흘러나오던 때, 나는 고작 중학생 언저리였다. 어느 날, 유튜브로 해외 유학생들의 일상을 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우물 안 개구리로 느껴지기 시작한 건. 매일 같은 옷, 같은 교실, 같은 수업.. 반복된 일상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선언했다.

“엄마 나 미국 유학 보내주면 안돼? “


어렸던 나는 ‘꿈은 이루어진다.’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미국 유학에 들어가는 비용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유학원에 상담도 받아보고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등을 알아보며 해외로 떠날 궁리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미국 유학은 최소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어갔고, 우리 집은 나에게 그만한 투자를 해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렸던 나의 꿈은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만 바라보며 대학에 입학했다.


교환학생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가득했지만, 모순적이게도 난 영어를 제일 싫어했다. 교환학생에 지원하려면 일정 기준 이상의 어학 성적이 필요했는데, 처음 응시한 어학 성적으로는 택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8시간씩, 거의 두 달을 영어만 붙잡고 살았다. 성적이 점점 오르나 싶다가, 지원 시기를 앞두고 성적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결국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한 채 지원이 마감됐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일까.

마감 다음 날, 지원기간이 연장되었다는 공지가 떴고, 나는 마지막으로 응시했던 시험 성적이 잘 나오기를 빌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준 점수를 맞출 수 있었고 교환학생에 무사히 지원했다.


국문, 영문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학교 선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의 1지망 국가는 독일이었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명언이 괴테의 명언이었다는 점. 어디선가 들려온 매력적인 악센트가 독일어였다는 점. 전쟁 역사에 있어 자국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 다양한 이유로 마음속에 1지망 국가는 독일이었고, 당연히 독일로 교환학생을 희망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나의 전공 수업은 오로지 독일어 코스로만 열린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교환학생에 지원하기 위해 영어 성적도 겨우 맞췄는데 독일어라니.


결국 다른 국가의 대학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나의 후보군은 헝가리, 네덜란드, 스페인으로 좁혀졌다. 대학 위치, 명성, 생활비 등을 고려한 끝에,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는 헝가리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헝가리로 교환학생을 떠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더욱 내성적으로 변하는 나였기에, 응원보다는 걱정들이 쏟아졌다.


“왜 하필 헝가리냐. 더 잘 사는 나라를 가야지.”

“가서 영어는 쓸 줄 아냐.”

“네가 외국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냐.”


사실 나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원하던 일이었기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확신에 차 있었다. 아마도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오지랖 덕분에 더 씩씩하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첫 해외여행이자 첫 독립을 할 부다페스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