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떠나고 싶을까
고아성 주연의 <한국이 싫어서>는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영화였다. 보지 않아도 내가 공감할 이야기일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막상 보려니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너무 내 이야기 같을까 봐, 혹시나 감당하기 힘들까 봐 미루고 또 미루다 최근에서야 보게 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 정도면 내 이야기를 가져다 쓴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닮아 있었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 특별히 내세울 만한 학벌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한 경쟁력이 있거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성격도 아닌 사람. 그게 나다.
나는 늘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무엇을 위해 대학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반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해야 하는지. 남들이 정해둔 경로를 따라가는 삶이 과연 나에게도 정답인지 확신이 없었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삶을 접했다. 그때부터 막연히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집 형편에 불가능한 꿈이었고, 자연스럽게 그 꿈은 마음 한편으로 밀려났다.
대학생이 된 후, 이것저것 하며 모은 돈으로 유럽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1년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내게 허락된 시간은 5개월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출국 전까지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잘 지냈다. 오히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지금도 휴대폰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그 5개월 동안의 내 표정은 유난히 다채롭다. 평소 사진을 찍으면 늘 무표정하던 내가 그곳에서는 웃고 있었고, 살아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늘 어딘가에 쫓기듯 살았다. 그저 주어진 역할을 해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기분이었다. 삶에 대한 열정보다는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체념이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현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5개월이 꿈이었나 싶을 만큼 빠르게 일상에 잠겼다.
취업을 준비하며 깨달았다. 내 전공으로 일을 하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기회가 많다는 것을. 요즘 회사들이 요구하는 인턴 경험을 쌓으려 해도 결국 서울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보증금이 없었다.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취업 준비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음이 복잡했고, 답답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늘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러다 유난히 힘들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가겠다는 꿈은 내 상황에 비해 너무 큰 욕심은 아닐까.’
포기하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수없이 되묻기도 했다. 그런데도 결국, 다시 외국으로 나가 있는 나를 상상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교환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언젠가 다시 그곳에 서 있을 나를 그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때는 학생이어서 힘들 게 없었을 거야.” “한국도 충분히 살기 좋은 나라야.”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재인의 말처럼 힘들더라도 자유로운 곳에서 기꺼이 힘들겠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방향에서 겪는 고생이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계나 부모의 모습은 우리 부모님과도 닮아 있었다. 부모님은 대학을 포기하고 일찍 사회로 나와야 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고, 어머니는 우리를 낳고 기르며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안정적인 직업 없이 일용직 노동을 이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늘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다치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해가 뜨기 전 집을 나서는 발소리를 들을 때면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꿈을 쉽게 접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했다. “노후 준비는 꼭 해주세요. 제가 도울 수는 있지만 모든 책임을 다 질 수는 없어요.” 그리고 “부모님의 노후 때문에 저와 동생이 간절한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어쩌면 이기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조금이라도 덜 불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직장에 다니며 언젠가 다시 해외로 나갈 날을 준비하고 있다.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기회를 기다린다.
갈 수 있을까.
아니, 갈 것이다. 꼭 가야 한다.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