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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pr 17. 2022

아무래도 싫은 일

아버지는 한 중견기업 건축 회사에서 30년 간 근무하셨다. 


안정적이고, 꽤 괜찮은 보수의 직책으로 일하셨던 아버지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몇 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셨고, 결국 예정보다는 조금 일찍 은퇴를 하셨다. 가족에게 단 한 번도 직장을 다니는 것에 대해, 자신의 직업에 대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평을 하신 적이 없었던 아버지. 


남 밑에서 일하면서 때로는 부당함에, 때로는 자존심에, 때로는 쏟아지는 피로감에, 싫었을 적도 분명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싫은 티를 우리에게 비추신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싫은 일


두 딸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본인 몫은 늘 알뜰살뜰 사셨던 아버지는 마치 가끔 보면 천천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스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큰 물욕 없이도 잔잔한 물결처럼 인생을 사시는 분이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를 팔아버리는 바람에 몇 억을 손해 보았을 때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집은 너무 부자가 돼도 불행하당!"


물욕이 크지 않지만 우연히 로또를 사면 당첨이 되는 희한한 복을 가진 분이다. (3등 당첨이 된 이후로 욕심이 날 법도 한데 더 이상 구매는 안 하신다) 그때도 당첨금을 타고 한 참뒤에 나에게 말해주셨다. 


"엣헴, 우연히 한번 사봤는데 3등이 되었느니라"


그것도 엄마한테 다 줬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행운보다는 일 끝나고 시장 가서 잘 익은 과일 한 봉지와 내일 아침에 밥이랑 먹을 국물 한 사발이면 아버지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해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물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취미 생활을 하며 백수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오래 몸 담았던 직장에 은퇴하신 후,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 집에 큰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먹고살 걱정할 만큼 월세를 내야 되는 상황도 아닌데, 최저 시급을 주는 곳에서 학원 차량을 운전하거나, 운전 학원에서 강사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버신다. (100만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근무일수가 늘어나 180만원까지 임금을 올리셨다)


나는 언제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의 창작 사업을 시작하나, 이 궁리로 항상 보내고 있는데, 아버지는 그 '일'이 무엇이던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에 대한 보수를 받는 일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신다. 단순히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얼마를 벌던 '나는 일 하고 있다, 그리고 돈을 버는 중이다'에 초점을 맞추고 '무언가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인지하며 살아가고 계신다는 느낌이 크다. 


내 경우는 아버지와는 다르다. 돈이 당장 필요하지 않는데 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해? 아무래도 싫은 일을 하는 것은 그냥 너무 싫어 죽겠다. 나의 내적가치를 올릴 수 있는 만족스러운 직업을 갖고 싶고, 하기 싫은 일은 저 멀리 깡통 차듯 내던지고 싶다. 그런데 서른둘이 된 지금, 아직도 그게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돈을 벌어야, 내 생활이 편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다. 또 막연히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일보다는 만족도가 낮은 일이여도 돈을 벌며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왜 안되나? 왜 싫어하는 일을 참고 다녀야 하나?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가고 확신이 생기면 그것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여 그럭저럭 먹고살고는 있지만, 만족이 100이라면 불만족도 100인 삶은 0과 같다. 개노잼이다. 만족이 300이고, 불만족이 100인 직업을 찾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할까? 아니, 좋아하는 것을 찾기 전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 보다는 명확해졌으면 한다. 

뭐든. 



글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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