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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Nov 26. 2024

나의 피구 선생님

초등학교 친구를 떠올리며

너는 나보다 키도 컸고, 여자치고 힘도 셌고, 늘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녔지. 누가 봐도 튼튼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체격에,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기억나. 작고 힘없는 나와, 크고 건강한 너. 우리 둘은 어떻게 친해졌을까? 기억은 안 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너랑 같이 노는 게 너무너무 재밌었던 것 같아. 사실 나는 너에게 부러운 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네가 체육시간에 피구를 너무 잘한다는 거야. 공을 어쩜 그렇게 높이, 멀리 던질 수 있어? 네가 던지는 공은 정말 빠르고, 에너지가 넘쳐서 아무도 피하지 못했지. 피구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나는 늘 맨 처음에 공을 맞아버리고 허무하게 선 밖으로 나갔었는데, 너는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상대팀을 신나게 맞추고 있었지. "미현아, 나도 알려줄 수 있어? 공을 던지는 방법을 좀 알려줘" 기억나니?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이야. 나는 공을 잘 던지는 네가 정말 부러웠거든. 학교가 끝나고 빈 운동장에서 나는 너에게 피구 과외를 받았는데, 결국 팔 힘이 약했던 나는, 너만큼 실력이 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이렇게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는지, 너는 아마 몰랐을 거야. 나는 너로 인해 나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 찼어. 너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외롭고 쓸쓸할 틈이 아무것도 없었고, 나의 고민과 걱정을 너에게 나누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몰라. 나는 너를 미탱이라고 불렀고, 너는 나를 여리라고 불렀는데, 이것도 너는 기억할까?


우리가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는, 아파트 재개발로 인해 우리가 마지막 졸업생이 되었지. 나는 근처 중학교에 진학을 했지만, 너는 동네를 떠나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어. 항상 붙어 다니던 네가, 멀리 이사 간다고 하니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우리는 한동안 통화를 하면서 각자의 학교생활을 공유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점점 서로를 찾지 않게 되었어.  학교가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니,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줄어들고, 결국 연락이 어느새 끊기게 되었지. 우리는 "지금의 친구"새로 사귀게 되었고, "과거의 친구"낡은 책장 속에 넣어버리게 되었던 거야.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너를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 너도 분명 그랬겠지. 거리가 멀어지니, 서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더군다나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과거가 되어버렸지. 벌써 20년 이상이 흘러버렸네.


나의 피구 선생님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어.


요즘 친구들 꿈을 자주 꾸는데, 어제는 너가 나왔어. 꿈속에 너는 나에게 피구를 알려주고 있었지. 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던져야 멀리 날아가는지를 내게 차근 차근 알려주고 있었지. 나는 정말 간절했거든. 공을 너처럼 잘 던지고 싶었어. 꿈속의 너의 모습은, 여전히 건강하고 튼튼해 보이고, 당당해 보였어. 소심하고 약한 나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해 주었고, 좋아해 주었고, 응원해 주던 모습이었어. 그리고, 호탕한 웃음소리까지 들렸어. 오늘 꿈에서 깨고 난 뒤, 남편이랑 병원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혼자 서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편을 집으로 보내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살피다가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매를 했어. 집에 와서 커피 한 잔과 구매한 책을 읽었는데, 글이 따뜻해서 너무 좋더라고. 책을 읽는 중에, 꿈속에 네가 생각이 나서 바로 브런치에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이상하게 내 마음속에 보물상자처럼 보관되어 있던, 너와의 기억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너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찼어. 그리고는 책을 덮고, 너와의 기억을 글로 써 내려가는 중에, 우연히 내가 구매한 책의 작가님 성함을 보게 되었어.


"김미현", 바로 너의 이름이야. 아마 동명이인이겠지만, 너무 신기했어. 나는 어제도 너 생각을 했고, 오늘도 너 생각을 하다가 책을 샀고, 또 너의 이야기를 적었는데, 너의 이름을 보게 된 거야. 그렇게 오늘은 너로 가득 찬 완벽한 하루가 되었어.


몇 년 전이었을까? 네가 오래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아. 지금 잘 살고 있을지, 아이는 낳았을지, 무척 궁금해. 꿈속의 너를 보게 되어서, 조금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말해주고 싶어.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글이, 언젠가, 몇 년 뒤라도, 너에게 흐르듯이 닿았으면 좋겠다. 슬프지만 우리의 마지막이 잘 기억이 안나. 어떻게 연락이 끊겼는 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정말 멋진 친구였어.


책 제목은 [지금 난 여름에 있어], 김미현 작가님 입니다. 너무 좋아요 아껴 읽을 거예요 :)


글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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