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Nov 16. 2024

잃어버렸지만 찾고 싶은 것들

매일 안경을 쓰진 않는다.


TV나 영화를 볼 때나, 컴퓨터를 할 때, 멀리 놀러 가서 경치를 보고 싶을 때만 안경을 쓴다. 길을 걸을 때나, 평소 일상생활 할 때는 쓰지 않는다. 안경을 안 써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렇다고 눈이 좋은 것은 아니라서 필요할 때는 꼭 써야 한다. 눈이 아주 안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그냥 약간 불편한 대로 대충 살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안경을 쓰면 안 그래도 낮은 콧대가 더 낮아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고, 화장이 지저분하게 묻는 것이 싫다. 무언가를 덮지 않고 맨 얼굴로 다니는 내 모습을 더 좋아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경쟁이의 삶을 철저히 거부하되, 필요에 따라서 쓰곤 한다.


그래서 내 안경은 집에서 데굴데굴 어딘가에 먼지구덩이와 함께 굴러다니곤 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소중하지 않으니까, 딱히 자주 필요하지 않으니까. 어디에 있든 별로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 안경이란 놈이 최근 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컴퓨터 책상 근처에 있거나, 백팩 안에 안경통이 있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렴하고 평범한 안경이긴 했지만, 이 안경을 꽤나 오래 썼다. 한 5년이 넘었나, 남편을 만나기 전에 샀으니 그 정도 됐을 것 같다. 하얀 뿔테의 안경이었는데, 가볍고 쓰기도 편했다. 그리고 이 안경을 쓸 때마다 내가 회사 선배였던 시절이 생각난다며 남편이 귀엽다곤 했었다. 막상 잃어버리고 나니, 내가 꽤나 이 안경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소중한 건 왜 잃어버려야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일까? 숨 쉬듯 같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그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보통 일주일 정도 찾아보고 도저히 찾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잃어버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 오늘로써 한 달이 지나버렸다. 안경은 진짜로 잃어버렸다.


그래도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되지는 않을까?

희망을 갖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잃어버렸지만 찾고 싶은 것들


문득 현재 잃어버렸지만, 찾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이 안경 말고도, 내가 평생 찾고 싶은 것은 어떤 게 있을까?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꽁꽁 숨겨왔던 것들이 있다.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잃어버리고만 것들. 곁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들.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낙엽처럼 지고만 것들. 계절이 지나면 돌아올 줄만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그때의 낙엽은 여전히 땅 속에 묻히고만 것들. 알고 보면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였는데, 늘 곁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대충 주머니에 동전과 같이 구겨 넣다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것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어지니 나를 너무나 쓸쓸하게 하는 것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서,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끝내 모두 지워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이와이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서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있다.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겠습니다"


나만의 공간인 이 브런치에서도 그 말을 적지 못하겠다. 잃어버린 것들을 써 내려가는 순간,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정말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어내는 것도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런데 안경은 디테일하게도 써버렸다......)


언젠가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얀 뿔테 안경도, 그리고 잃어버린 나의 낙엽들도.


여러분도 잃어버린 것들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