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부양

사라진 딸기와 블루베리

by 여미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언니를 보자마자 조각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고 글만 쓰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자신의 음료도 같이 사 오라며 흔쾌히 카드를 내게 건넸다. 답답한 찰나에 산책도 할 겸 달콤한 디저트를 먹을 생각에 나는 무척 신나 했다.


집 근처 카페를 갈 작정으로 대충 겉옷을 챙기고 슬리퍼를 신고 간 것이 화근이었을까, 엄청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언니가 원하는 딸기 스무디와,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를 박스에 담고 딸기 타르트까지 포장해서 신나게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분명 서두르지 않았고 뛰지도 않았는데, 집 앞 계단을 오르는 중에 어느새 나의 몸은 공중에 떠있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이후로 넘어지거나 다친 적이 없다. 그것도 교내 운동회 같은, 상황적으로 꼭 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내 무게중심은 속력을 가할수록 힘을 잃는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달리기를 싫어하게 됐고, 습관적으로 느릿느릿 걷게 되었다. 문제는 느리게 걷는 탓에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기고, 그러면서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슬리퍼를 신었기 때문에 돌부리나 모서리에 걸려 넘어져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 어떤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결론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무엇인가에 부딪히는 아픔을 먼저 겪고 말았다. 내 두 눈은 멀쩡했고, 내 두 다리는 분명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했다.


내 양쪽 손에 들려 있던 음료들과 조칵케잌도 나와 함께 공중에 얼마 동안 떠있었다. 그 찰나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단 하나였다. 있는 힘껏 바닥에 닿지 않게 물건을 높게 올리면 내 몸에 생길 수 있는 상처는 피할 수 없더라도 디저트들을 집에 가서 맛있게 먹을 수는 있지 않을까, 라며 몸을 최대한 기울였다. 그러나 생각과 몸은 동시에 움직이지 못했나 보다. 결국 내 몸은 90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투명한 플라스틱 통은 이미 찌그러져 있었고, 딸기와 블루베리가 적절히 믹스되어 바닥에 흐르고 있었으며 내 무게에 못 이긴 케이크는 거의 반 이상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내가 다쳤다는 사실보다 이 음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큰 좌절을 했다. 바닥에 너부러진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서 뭐라고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겉옷은 이미 블루베리와 딸기 시럽으로 범벅이 되었고 그 옷은 하필이면 언니가 아끼는 옷이었다.


성인이 되어 밖에서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울부짖으며 엉망이 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곁에 친구라도 있었으면 황당해서 같이 웃기라도 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만 덩그러니 쓰러져 있었다. 나에게 주는 어떠한 위로의 신호를 주고 싶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딸기와 블루베리만 지켜냈어도 그렇게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사람이 단 한입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곧이어 선택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 상황을 미리 알려야 할지, 아니면 이 꼴로 집에 조용히 들어가야 할지.


결국 나는 밖에 있는 상태에서 언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현재 나는 모든 걸 잃었고 내 양손에는 어떠한 박스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울부짖었다. 그 말을 한 즉시 잊고 있었던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에는 총 세 군대의 빨간 상처가 흐르고 있었다.


언니는 놀라움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먹을 수 없을 정도냐며 연거푸 물었다. 나는 그렇다 말했고, 괜찮냐고 물었을 때는 굉장히 까칠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어머니 또한 내가 감기와 같은 병에 걸리면 걱정도 걱정이지만 왜 그 상황이 오도록 몸을 보살피지 않냐며 나무라시곤 한다. 언니 또한 나에게 화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관해 물었을 때, 순간적으로 몸에 묻은 시럽을 상처투성인 손바닥으로 닦아내는 나를 발견했다.


몇 걸음 더 걸어가서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가 상처가 난 손을 깨끗하게 닦고 그녀의 옷 또한 흐르는 물에 씻어냈다. 언니는 다친 와중에 치료를 해야지 왜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지하철역까지 갔냐며 나무랐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빨간색과 보라색이 뒤덮인 옷을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모든 처리가 끝난 뒤 집에 들어가는 중에 괜히 겁을 먹고 다른 길을 택해서 걸어갔다. 이전과는 다르게 주위를 살폈고, 바닥에 무엇이 없는지 확인하며 걷느라 처음으로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망치로 때린 듯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내가 조심성이 없었나,부터 시작해서 이러다가는 이보다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작고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고민과 갈등을 안고 살아가지만, 내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며 어떤 꿈과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단 말인가.


달콤한 디저트를 먹겠다고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공중부양을 하고 변을 당했다. 딸기랑 블루베리는 물론이고 설탕가루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나 익숙한 동네에, 익숙한 거리를 오고 가다 보니 아무런 긴장감이 없었던 탓일까. 새로운 장소를 찾아갈 때마다 지도 어플을 켜고 이곳저곳을 확인하고 살피며 걸어갔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잘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 익숙하고 편한 존재라고 해서 예의와 존중을 잃은 채 방치한다면 결국 언젠가 터지고 만다. 달콤함은 지키지 못할 것이고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대라는 사람이 나를 떠난다면, 내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작고 사소한 배려를 통해 충분히 느끼게 할 수 있지 않는가.


영롱한 색을 뗬던 딸기와 블루베리는 사라졌지만, 다시는 공중부양을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얻었다. 멍하니 하늘을 보며 사색에 잠기는 일은 이제는 없을 거라며, 내 몸을 부둥켜안으며 또다시 울부짖었다.


나는 단지 꿈을 꾸고 싶었을 뿐이야

글/그림 여미

커버 사진 최영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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