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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으로의 초대. 홋카이도 여행기!

by 주하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나도 갔다, 삿포로!


일본의 삿포로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가 자주 결항 된다더라.

그래서 누군가와 단둘이 오래토록 함께 있고 싶을 때 삿포로에 가자는 말을 한다더라.

예상치 못한 비행기의 결항과 함께 할 달콤한 연애를 기대하면서.


다들 그렇게 좋다고 사랑 타령 하는 삿포로에 다녀왔다.

무려 10박 11일을.

삿포로 여행을 검색하면 보통 3박 4일이나 4박 5일 코스를 많이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여행은 싫었고, 시간에 쫓기며 허둥지둥 움직이는 여행은 더더욱 싫었기 때문에

원 없이 즐기다 오겠다는 생각으로 길게 일정을 잡았다. (종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ㅎ)

사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11일 중 이틀은 아무것도 못하는 날이었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여행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12/23-1/2)


다들 ‘여행기’ 라고 하면 보통 시간 순서대로 쓰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여행은 구체적인 계획이랄게 없었고, 그나마 있던 작은 계획들도 충동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장소 위주로 기록하겠다.





1. 스스키노 거리 (すすき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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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키노 거리는 스스키노 역 근처에 위치한 상점가이다. 메가 돈키호테나 유명한 음식점, 호텔, 심지어는 유흥업소까지 모조리 이 거리에 모여있다. 그리고 삿포로 여행 계획을 짜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 쯤 봤을 법한 니카상이 있는 곳이다. 사실 이 거리 자체에 볼 거리가 있다고 하기 보단 눈 내린 삿포로 도심의 분위기가 가장 극대화 된 곳이 이 곳 아닐까 싶다. 숙소를 찾아 스스키노 거리를 관통해 삿포로 시내 이곳 저곳을 헤매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캐리어를 끌어도 바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이 많이 내리니 이런 점도 있군... 하고 신기하기도 했고 서울과 다르게 고요하니 좋았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관광객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다들 넘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2. 삿포로 맥주 박물관 (サッポロビ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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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맥주는 환상적이다. 술을 마신지 고작 1년밖에 안되었지만 삿포로 맥주가 최고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먼저 삿포로 여행을 다녀온 분이 삿포로 맥주 박물관은 별 거 없고 1층에 있는 시음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삿포로 맥주의 구체적인 역사는 그닥 흥미롭게 보지 않았지만, 1층 시음장에서 시음한 맥주는 귀국하고 한 참 뒤에도 생각날 만큼 맛있었다. 기분 탓일까,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삿포로 클래식 캔 맥주보다도 이 박물관에서 시음했던 맥주가 더 시원하고 맛있었다.

3가지 맥주 모두 우위를 가릴 수 없이 훌륭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블랙라벨이 제일이었다. 처음엔 '클래식이 역시 제일 맛있네' 싶었는데 먹을 수록 더 먹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맛은 역시 블랙라벨.



3. 홋카이도 대학 (北海道大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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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과에 진학한 이래로 줄곧 일본 유학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겸사겸사 삿포로의 홋카이도 대학교를 탐방해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다닌 곳은 대학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캠퍼스가 유난히 작아서 더욱 그렇게 느낀 것인진 모르겠지만 홋카이도 대학은 정말 ‘대학교’하면 떠올릴 만한 로망을 갖추고 있었다. 부지가 아주 넓었고, 눈 내린 캠퍼스의 전경이 아름다웠다.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무슨 건물을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푯말에 학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홀린 듯 들어가 보았다. 학식 가격은 얼마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각 케이크 하나가 98엔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동도 300엔~400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격에 비해 정말 맛있어서 언젠가 교환학생을 오게 된다면 이 학교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돼지 같네…)



4. 시로이코이비토 파크 (白い恋人パー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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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곳을 알아봤을 땐 그닥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가면 좋아할 것 같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대 없이 갔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만족했던 곳. 시로이코이비토 파크는 다들 알고 있는 유명한 '그 과자'의 공장이다. 과자가 생산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시로이코이비토’라는 명칭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등등 삿포로 맥주 박물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좀 다른 느낌이 있다면 ‘파크’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 건물 외부에 조형물을 이것저것 예쁘게 꾸며 놓아서 사진 찍기에 좋았고, 크리스마스에 갔었던 터라 더더욱 좋았다. 흔한 삿포로의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기념품들도 많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오르는 장소랄까.

추천을 하자면 애매한 3시쯤 가서 내부를 돌아보고, 해가 질 때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으면 완벽하다.



5. JR 타워 & 삿포로 시계탑 (JR タワー & 時計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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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시내에는 두 가지 전망대가 있다. 하나는 JR 타워, 하나는 TV 타워이다. TV 타워는 생각보다 볼 게 없고 JR 타워보다 규모가 작다는 평이 많아서 굳이 두 개의 전망대를 모두 가 보지는 않았고, JR 타워만 방문하기로 했다. 전망대라고 해서 뭐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삿포로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런지 어느 한 커플은 산타복과 루돌프 분장을 하고 틱톡을 찍고 있었다. SNS 용 영상 촬영을 직관한 건 처음이었는데, 조그만 휴대폰 앞에서 두 사람이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영상을 찍는 두 사람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덕분에 덩달아 행복해졌다.

삿포로 시계탑은 지나가면서 스윽 보기에 좋았다.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았지만 너무 늦게 가서 문이 닫혀있었다. 사실 삿포로에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딱히 깊은 인상을 주진 못했던 랜드마크(?).



6. 홋카이도 신궁 & 마루야마 공원(北海道神宮 & 円山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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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신궁에서 기도를 했다. 일본의 신사에서 기도를 해 본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옆 사람 눈치를 보았다. 한국과 비슷하게 기도를 하고 돈을 넣는 문화였는데, 꽤 비싼 지폐를 두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소원의 간절함도 역시 금액에 비례하는 걸까. 내가 빈 소원은 100엔짜리였다.

당일 내내 눈이 안 오다가, 신궁에 도착하니 눈이 슬슬 내리기 시작했다. 신궁 근처에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는데, 그 사이로 무거운 눈송이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이 내린다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오래된 신궁과 빽빽한 나무들과 크고 두꺼운 눈. 이 세 가지 조합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무척 서정적이었다.


신궁 근처에는 마루야마 공원과 마루야마 동물원이 있었다. 마루야마 공원 나무를 관광객들이 눈으로 장식해 둔 모양이 퍽이나 귀여웠다.

그리고 인파를 따라 걷다보니 마루야마 동물원이 나왔다. 랫서판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홀린 듯이 입장권을 끊었다. 동물원 내부는 우리나라 서울랜드와 비슷했는데, 다만 크기가 조금 컸다.

동물원 일정은 삿포로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정이기도 하다. 신궁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얌전히 아름답게 내리던 눈이 어쩐 일인지 폭풍우가 되어 뺨을 때리기 시작했고, 동물원에는 언덕이 너무 많아 관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마루야마 동물원에 가게 된다면 꼭 날씨가 좋은 날에 갈 것을 추천한다. 덧붙이자면 꼭 다음 일정은 비워두기를...



7. 오도리 공원 & TV 타워 (踊り公園 & TVタワ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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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도리 공원과 TV 타워, 앞서 소개한 스스키노 거리와 JR 타워, 삿포로 시계탑은 하루에 한 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어져 있다. 이 많은 것들이 모두 걷다 보면 하나 둘 씩 등장한다. 삿포로 시내 구석구석이 모두 관광지인 셈이다. 그래도 지도에서 가까운 파트로 묶어서 보자면 오도리 공원과 TV 타워를 한 세트로 묶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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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말고 찍은 고구마 사진

오도리 공원은 일본 여행에 한 번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많이 접해봤을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이 열리는 장소다. 공원 근처에 푸드트럭처럼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기념품을 구경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신호등을 건너다가 운명처럼 군고구마 트럭을 만났다. 성인 여자 주먹 두 개만한 고구마를 신문지에 감싸서 주셨다. 추운 날씨에 고구마를 핫팩 삼아 소중히 붙들고 걸으며 일루미네이션 공원을 산책했다. 연인들이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삿포로는 도시에 머무는 것만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8. 니조시장

개인적으로 시장은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먹으러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저녁을 이 곳에서 먹을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늦게 시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가게들이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 한 2-3개의 가게가 영업 중이었는데, 그 중에서 발이 닿는 아무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보니, 메뉴판에 적힌 글씨는 모두 일본어였다. 일본어과에 오긴 했지만 아직 현지 이자카야의 메뉴판에 있는 한자를 읽을 정도의 실력은 안 되었기에 파파고를 써 보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이자카야에는 수기로 작성된 메뉴판이 많다. 이 가게의 경우도 그랬다. 파파고에 인식이 되지 않았다. 여행 중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지만 대충 아는 한자들로 무슨 메뉴일 지 추측해가며 음식을 주문했다. 가게 사장님께서는 처음에 메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나를 보며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셨다. 골치 아프게 외국인이 왔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고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사케 추천을 받았고, 메뉴 설명도 부탁 드렸다. 일본어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여쭈어보셨다. 그 모습을 보더니 같이 식사하고 계시던 다른 손님까지 합세해 작고 조용한 이자카야에 방문한 정체불명의 이방인에게 두 명의 현지인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곰들의 집에 몰래 들어와 자고 있는 인간 소녀를 본 듯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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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좋아하는지, 일본의 지역 중 가 본 곳이 또 있는지, 음식은 취향에 맞는지 등등 이야기 했다. 잘 못 알아들은 부분도 있었지만 웃으며 넘어갔고, 사장님과 다른 손님도 나의 동문서답에 웃음으로 화답해주신 듯 했다. 무서운 분이신 줄 알았는데 따스한 분이셨고, 미소가 참 귀여우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명함까지 주시며 또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식당에 내가 아끼던 목도리를 두고 와버렸다. 나중에 삿포로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다시 찾아가 목도리를 빌미로 찾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때에도 사장님이 날 기억하셨으면…)


P.S. 나는 사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어과에 진학한 것이 아니었다. 성적 맞춰서 갈 수 있는 대학의 학과를 찾다 보니 우연히 일본어과에 오게 된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없기도 해서 그냥저냥 시키는 대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날을 기점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순수 재미를 찾았다. 이 기억으로 일본어에 대한 애착을 좀 가지지 않을까 싶다.



9. 삿포로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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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삿포로 팩토리라서 삿포로에 들르면 무조건 가야할 것 같은 곳이지만 막상 가보니 별 거 없었다. 한국에 있는 백화점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서 귀멸의 칼날 굿즈와 귀여운 목도리 하나를 건진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곳. 일정이 촉박하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비에이 & 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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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에 가기 전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비에이, 후라노.

무한한듯한 설경 중앙에 큰 나무가 우뚝 서 있는 바로 그 곳이다.

비에이 후라노는 삿포로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당일 버스 투어를 예약해 이동했다. 비에이 후라노 투어를 갈 예정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가기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글라스다. 흰 눈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부시게 만들어 찡그리고 다닐 수 밖에 없었고, 시도때도 없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함박눈이 자꾸만 눈에 들어가 불편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홋카이도 신궁에서 느꼈던 서정적인 감성은 없었지만 꼭 한 번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그만큼 자연경관이 멋졌다.


멋진 설경과 더불어 볼 것이 있다. 바로 밤하늘의 별이다. 투어를 마치고 다시 삿포로 시내로 돌아가는 저녁, 휴게소를 들르기 위해 중간에 잠시 내렸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이미 노을조차 자취를 감추어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그 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별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았다. 낯선 이국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설경과 밤하늘의 별 말고도 인상깊었던 것이 있다면 탁신관이다. 탁신관 코스에서는 자작나무 숲과 일본의 유명 사진 작가인 마에다 신조의 작품 전시를 볼 수 있다. 마에다 신조가 쓴 시를 창문에 붙여두어 설경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 공간에서 오는 감격은 사진이 대신 설명해 줄 것이다.


+ 내가 선택한 투어에서는 언덕에서 썰매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한 번도 타 본적 없는 썰매를 타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 썰매를 타다보면 눈 때문에 신발과 양말이 축축해 질 수 있다. 여분 양말을 챙기는 걸 추천한다.



KakaoTalk_20250301_230450464_02.jpg 雪、雪、雪、あなたの目にどうの映るだろう。
KakaoTalk_20250301_230450464_01.jpg 자작나무 숲
KakaoTalk_20250301_230450464_05.jpg 밤하늘. 사진보다 실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KakaoTalk_20250301_230450464_03.jpg 흰 수염폭포





오타루


오타루는 삿포로를 여행하러 간 사람들이 당일치기 코스로 잠시 들른다는 소도시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서 12월 29일부터 마지막 날인 1월 2일까지 총 4박 5일을 머물렀다. 미리 오타루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너 거기서 5일이나 뭐하려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맞다. 오타루는 정말 할 게 없다. 심지어 연말의 일본은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그래서 사실 3일 정도는 근처 현지 마트에서 장을 보아 식사를 해결하며 낮에는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저녁에는 숙소에 돌아와 술을 마시며 보냈다. 딱히 관광을 하려고 간 건 아니었고, 그저 일본의 여운을 조금 더 즐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있지 않다. 소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글 리뷰가 50개도 채 되지 않는 숨겨진 빵 맛집도 찾아냈고, 눈이 잘 쌓이지 않는 서울에서 하지 못했던 눈오리도 실컷 만들었다. 오타루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해가 지고 난 뒤에 너무 으스스하다는 점이다. 겨울이라 6시만 되면 해가 떨어지는데, 인구수도 적어서 길에 다니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다. 그래서 저녁엔 거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 2025년 1월 1일 새해의 카운트다운은 일본 방송을 통해 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무리 소도시인 오타루라도 관광지는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삿포로의 도심보다 매력적일지도.

지금부터 그 몇가지 관광지에 대해 소개하겠다.




1. 어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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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공장의 이름을 듣고 삿포로의 맥주 공장을 기대하면 절대 절대 안된다. 사실 어묵 공장이 아니라 어묵 가게가 아닌가 싶다. 어묵 공장은 볼 거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어묵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으니 만족한다. 맛은 정말 어묵으로 이렇게까지 맛있는 맛을 낼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2.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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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약 4-5개 정도 밀집해 있는 구역이 있다. 거기서 두 군데 정도를 둘러보았다. 하나는 예전에 은행이었던 곳을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개편한 곳이었는데, 꽤나 볼만 했다. 정해진 시간마다 미술관 천장에서 디지털 아트 쇼를 보여주는데, 이것도 꼭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동영상 촬영은 불가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그리고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성경의 이야기를 유리 공예로 만들어 전시한 미술관이었다. 사실 유리 공예를 상품으로만 보았지 작품으로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신기했다. 유리로 이런 걸 만들 수가 있구나. 유리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뭐 이런 생각들.

그리고 사실 나는 무교라서 딱히 종교에 관심이 있진 않았는데, 작품을 보고 그 옆의 설명을 보다 보니 성경의 내용까지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영어와 일본어로만 쓰여 있어서 내가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ㅎㅎ…



3. 오르골당 & 사카이마치 거리


오르골당을 가는 길을 걷다 보면 사카이마치 거리가 나온다. 사카이마치 거리는 정말 관광지 중의 관광지 같은 느낌이다. 똑같은 음식과 똑같은 악세서리를 파는 가게가 연달아 줄지어 몇 개씩 붙어있는 것을 보고 조금 질렸다. 그 자본주의적 거리와 인파를 뚫고 오르골당에 도달하면 마치 오두막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르골당에도 사람이 정말 많아서 제대로 살펴보진 못했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가격은 그다지 착하지 않아서 뭘 딱히 구매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 특유의 섬세하고 귀여운 물품들을 많이 파니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오르골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여운 장식품들에게 귀기울이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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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타루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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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운하는 데누키코지 바로 뒤에 위치해있다. 한국에는 한강이, 체코에는 프라하강이 있듯이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강가였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오타루만의 감성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곳, 오타루를 여행하면서 왜 다들 삿포로를 말할 때면 사랑을 함께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관광 대신 당신이 상상하는 홋카이도의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삿포로도 좋지만 오타루가 제격일 것이다. 눈이 가득한 홋카이도. 눈 밖에 볼 게 없지만, 눈만 있어도 완벽한 도시.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기를.



5. 기타이치홀 (北一ホ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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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오르골당 근처에는 유명한 카페들이 밀집해 있다. 기타이치홀도 그 중 하나인데,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가보았다. 하지만 1월 1일이어서 그랬는지 피아노 연주자 분이 오지 않았다. 무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내부의 조명이 전부 석유등이어서 묘하게 나는 기름 냄새가 생소했지만 그 마저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한 듯 싶다.



6. 데누키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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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누키코지는 기대 이하였다. 사카이마치 거리와 비슷한데, 크기는 약 1/5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식당 정도 들릴 수 있는 곳. 대신 건물의 야경이 예쁘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눈 내린 도시의 풍경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삿포로, 비에이 & 후라노, 오타루의 관광지를 모두 소개했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사진이나 글로 보는 것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직접 가서 경험하는 것이 더 값진 일 일것이다.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지 어디어디를 들러야겠다는 정보만 수집하고, 무작정 가기로 결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무엇을 느꼈느냐 묻는다면 글이나 말로써 온전하게 표현해내기는 조금 힘들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또 다른 행복의 형태를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이 '행복'이라고 정의 내렸던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행복을 경험했다.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성취해내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 그저 현재의 풍경과 소음에 안주해도 된다는 안정감에서 비롯한 은은한 여유에서 오는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계획들은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의 지지대가 되어주리라는 것도 잊지 않고.


그렇다면 다음 글에서는 홋카이도의 미식(美食)의 세계로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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