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고통을 창조적으로 전환할 것인가.
2일 전, 나는 안과병원에서 각막 미란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학교에 우선 두 달간 병가를 내게 되었다. 2-3주 전부터 눈이 너무 아프고 불편했다. 컴퓨터 화면을 3분 이상 보는 것이 힘들었으며 책을 읽을 때에도 눈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일과 공부를 많이 해서 눈이 약해졌나 하고 안경을 맞추러 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통증은 심해지기만 했다. 안과를 세 군데나 갔지만 나의 이 불편한 눈에 대해서 제대로 진단을 내려주는 병원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게 된 병원에서 나는 눈에 찾아온 이 극심한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먼저 간 병원들에서는 그저 눈의 피로가 심하고 건조증이 심해 염증 반응이 일어났다고만 이야기했다. 처방된 약을 먹어도 호전이 없었기에 나는 다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갔던 병원에서 감사하게도 세심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나의 고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름도 생소한 각막미란. 병원에서 설명을 들었지만, 정신이 없었던 터라 집에 와서 무슨 질병인지 다시 찾아보았다.
‘각막미란 - 각막에 난 외상, 혹은 선천적으로 각막 상피층이 약해서 생기는 질병이다. 불치병까지는 아니지만, 한번 발병이 되면 완치가 되기가 힘들고 재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골치 아픈 병이다. 평상시에는 눈이 뻑뻑하다는 정도의 느낌으로 끝나지만, 문제는 수면을 취하고 난 뒤. 안구가 부어오르거나(염증 등), 자는 동안 건조해진 눈이 눈꺼풀과 달라붙게 되는데, 일반인이라면 눈을 뜨면 조금 뻑뻑한 느낌으로 일어나게 되지만, 안구가 상기의 원인으로 약해진 상태에는 각막 상피의 일부분이 벗겨지게 된다. 이때 수반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통으로 인해 눈을 전혀 뜰 수 없으며, 새빨갛게 눈이 충혈되며,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게 된다. 이 상태에서 다시 잠에 들어 렘수면 (급속 안구 운동 수면)에 이르면, 안구의 움직임이 벗겨진 각막과 결막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며 고통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병에 대해 읽으며 완치가 힘들다는 것, 재발이 빈번하다는 것에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각막 표면에 상처가 나서 눈을 쓸 때마다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진단서를 발급받아 학교에 제출했다. 기간이 명시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지만 법적으로 안과에서는 기간 명시 진단서를 제출할 수 있는 항목이 정해져 있었기에 학교에 설명을 드리고 병가를 내게 되었다. 치료 기간은 길면 6개월 빠르면 1-2개월 정도라고 한다. 수술적 치료를 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보존적 치료를 해주시겠다고 의사선생님은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다시 방문하라고 하셨다. 혹시나 해서 이틀 전, 구름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앞으로 긴 시간 학교에 못 올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은 계속 눈을 감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눈 아프세요? 그러면 저희가 선생님 눈이 되어드리면 되잖아요. 제가 선생님 눈이 되어드릴게요.”
“선생님! 눈 아프면 소아과(?) 가면 돼요!!”
“선생님이랑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선생님 언제 돌아올꺼에요? 올해 볼 수는 있는거에요? 꼭 오셔야 해요!”
왜 소아과를 가야하는지 궁금했지만. 구름반 아홉 살 인생이 해줄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다해 나를 걱정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빨리 돌아올 수도 있고 어쩌면 올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았다. 올해는 특히 마음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반이라 매일 소진되는 삶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학교를 떠나니 아이들이 그립고, 함께 보던 꽃들만 봐도 혼자 그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서글펐다. 구름반 아이들의 물방울처럼 빛나는 영롱한 눈망울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모니터와 책을 3분 이상 보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제 예전처럼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더라도 그 속도는 매우 느릴 것이며, 중간중간 충분한 쉼을 가져야 할 것이다. 때로는 1시간에서 3시간 가까이 글을 쓰고는 했지만 이제 그렇게 긴 글은 한동안 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다면 간단히 줄이고 줄여서 써야 하고, 녹음 기능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혹은 글 대신 간단한 그림으로 빠르게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은 잠시 두고 오디오 북을 활용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에는 종종 깊은 우울감과 무력감이 올라왔다.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하지만 기도를 하며 들었던 마음은 하나님께서 내가 빼도 박도 못할 방법으로 쉼을 주셨구나 싶었다.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공부하지, 어떻게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하지, 눈이 아닌 다른 수단은 없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주님께서는 제발 좀 쉬어라고 모든 방법을 동원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한 질병을 어쩌면 선물하신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아픔이 아니라 휴식과 회복을 선사하신 것이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 새벽 강의를 들으며 나에게 참 적절한 주제를 선물로 받았다. “Life Pivoting”. 인생에서의 피봇팅. 피봇팅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기존의 삶을 살아왔던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을 다른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어로 바꾸어보면 ‘삶의 창조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마음을 흔든 단어는 ‘전환’이었다. 나의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무기력에 빠져있지 말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방향으로 삶을 전환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삶의 창조적 전환’이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예술가는 마티스였다. 화가들은 평생 자신의 눈을 그림을 그리는데 써야 하기 때문에 노년이 되면 눈에 병을 얻거나 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티스도 삶의 절정에 다다를 때 더 이상 눈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성공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눈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마티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섬세하게 색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때 마티스가 떠 올린 건 과슈가 입혀진 색종이와 가위였다. 더 이상 섬세한 작품은 할 수 없지만 색종이와 가위로 단순하지만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예술의 혼을 불태울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때문에 마티스의 노년의 작품은 대부분 색종이로 표현된 작품이다. <폴리네이아의 하늘>, <암피트리테>, <블루 누드> 등 마티스의 대표작도 이 시기에 모두 나왔다. 그리고 마티스는 붓을 들더라도 굉장히 단순화된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수단은 바뀌었지만 예술에 불타오르는 그의 영혼은 조각나고 다시 새로운 형태로 모여진 그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이 시기의 마티스의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삶이 마티스에게서 눈을 가져가도 그에게서 예술에 대한 혼을 가져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고 들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는 평생의 감각을 70% 이상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눈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자연을 누리고, 책을 읽는 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를 꿈꾸었다. 나머지 20%는 청각, 10%는 나머지 감각들이었다. 이제 내 삶을 평생 70% 가까이 지탱하느라 힘들었을 눈에게 휴식을 주기로 다짐한다. 시각적 욕구에 집중하느라 잘 써주지 못한 나의 청각과 촉각, 후각 등 체각에 이제 도움을 청해 보아야겠다. 감사하게도 컴퓨터를 볼 때는 눈이 아프지만 자연을 볼 때는 눈에 쉼이 생긴다. 책을 눈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밀리의 서재를 통해 수 만권의 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강의를 보는 것은 힘들지만 잠시 눈을 감고 들었을 때 더 집중할 수 있음을 발견해간다. ‘열심히’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몸의 감각’을 되살리며 ‘열심히’가 아니라 이제 삶의 찬란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과 아픔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적절한 선물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제 그만 내려놓고 쉼을 가지라고 주신 명령이기도 하다.
섬세하게 나를 돌보시는 주님께서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강제로 주신 축복과 쉼의 시간이다.
주님 이제 조금 쉬어 갈게요.
주님 안에서, 주님께서 주신 자연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치료를 받고 눈이 조금 편안해지면 어디로든 잠시 떠나볼게요.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했던 나와 사랑하는 이들도 돌보며 살아갈게요.
그리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주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느껴볼게요.
주님 선물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저에게 힘을 주세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29 KRV
여울샘의 회복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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