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돌아보면 그녀는 항상 자기를 다그치며 살아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내야 하고, 자기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다그쳐왔다. 그리고 자기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면 왜 그러냐며 채찍질을 해왔다. 그러니 자기 몸과 마음을 잘 돌볼 리가 없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기는커녕 채찍질만 하다가 결국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_ p.19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볼까 서성이다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
책의 제목은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왜 나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을까?'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인지 나에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학부모님, 선생님들. 대부분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웃으며 타인을 대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나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누구보다 나에게 냉정하고, 가혹한 사람으로 긴 시간 살아왔다. 생존에 대한 이슈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신념 속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이 너무나도 길었다. 학교라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공부하고 강의를 하고, 워크숍을 운영하고는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영어와 글쓰기 연수 모임을 직접 운영하고 진행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영어 토론 모임에 나가 발표를 하거나 진행을 하기도 했다. 수면 시간은 5-6시간, 그 외에 10분도 낭비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밤에 침대에 누우면 모든 미션을 다 해냈다는 뿌듯함에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스스로를 탓하고는 했다.
나에게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
나에게 힘들지는 않은지 묻지 않았다.
그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잘 이루고 있는지만 확인했다.
그렇게 돌보지 않은 나의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많은 현대인들은 준 전시상태를 살아간다. 늘 긴장되어 있고 날이 서있다. 특히 시간을 생산적으로 혹은 효과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산성 강박’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이상한’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p.20
문제는 마냥 애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애를 쓴 만큼 보충해 채워 넣어야 한다. 그렇기에 애를 쓰려면 역설적으로 ‘애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그 시간은 고스란히 휴식이 된다. 애쓰지 않는 시간이 있기에 하고 싶은 것도 생길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도 해나갈 수 있다. P.21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 의사이다. 그는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사람으로 되어간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통합적 심리치유와 자기 돌봄을 연구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자기 돌봄이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삶을 아름답게 바꿔가는 주체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는 많은 현대인들이 준 전시 상태를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극심한 경쟁과 생존에 대한 불안을 겪으며 긴장되고 날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생산성 강박'에 빠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묘사가 내가 겪어온 삶과 다르지 않음이 느껴졌다. 나의 삶 또한 전시 상태처럼 항상 긴장되어 있었고,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있지 않은지 언제나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자기 계발 서적과 강의를 보며 더 생산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들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애를 쓰려면 역설적으로 '애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말이 쉽지'라고 느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 느껴지는 불안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느껴지는 불안. 끊임없이 더 성장하고 나아져야만 한다고 외치는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만 바뀌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나는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굉장히 발달한 사람이다. 아프거나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혼모 단체와 국제 구호 단체를 통해 기부를 하고 있기도 하다. 홈리스 분들의 자활을 돕는 빅이슈 잡지를 파시는 판매원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꼭 그 잡지를 사 오고는 한다. 서울역을 지나면서 노숙자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일부로 다른 길을 선택할 때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왜 스스로에게는 향하지 못했을까. 마음이 아프기 전에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리석게도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풋을 넣으면 무조건 아웃풋이 나오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1년간 상담 치료를 받으며 자기 돌봄의 시간을 가졌다. 생산성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오히려 여행, 심리 상담, 플라워 테라피, 비누 만들기, 운동 치료 등을 하며 나를 돌보는데 온전히 1년을 썼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어린 시절부터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가 되고 나니 오랜 시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평소의 모습을 보고서는 잘 모를 수 있다. 힘들 때 어떻게 자기를 대하는지를 봐야 한다. 대인관계나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 진면목은 힘들 때 드러난다. 자기 친절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난, 좌절, 갈등, 의사결정의 순간 등 힘든 상황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p.142
'자기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단어였다.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그것도 좋은 관계를 맺어간다. 나를 나의 소유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듯이 소중하게 돌보며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아닌 타인을 12시간이 넘게 노동하게 하고, 괜찮은지 묻지도 않고, 수년을 생산성만 강요하며 살아가게 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 상사가 나에게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건 직장 내 괴롭힘이며 갑질 신고 대상이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우리는 당연하다고 넘길 때가 많다.
나라는 존재도 내가 평생 동안 데리고 살아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함부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그랬듯, 몸도 마음도 파업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며 대해보자.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듯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 자기 연민은 자기 친절,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감각 그리고 마음 챙김을 포함한다. _크리스틴 네프 ‘자기 연민의 세 요소’
p.161
오늘 거울을 볼 때 가만히 자기 눈동자를 보며 눈 맞춤을 해 보라. 어색함이 느껴져도 가만히 바라보라. 그리고 대화를 시작해 보라. 꼭 어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안부부터 물어보자. “안녕!” “오늘은 어때?” “별일 없어?”
자기 친절에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작은 관심이다.
p.217
거울을 볼 때 나를 바라보며 친절하게 물어보는 것. 오늘은 괜찮은지, 몸과 마음은 어떤지, 하루를 살아갈 힘이 있는지. 나에게도 참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관심의 시작이 자기 친절의 시작이 된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하루를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웃으며 건네보자.
'나 자신에게 친절한가요?'
감사하게도 자기 돌봄을 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친절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괴롭히지 않으며, 아플 때는 쉬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고. 그리고 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게 그리고 즐겁게 삶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매년 수 많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왔었다. 하지만 올해의 목표는 단순하다.
‘자기 돌봄 그리고 일상의 행복 누리기’
내 삶의 이런 목표가 생기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서 나는 올해도 스스로를 위해 따뜻한 선생님과의 심리 상담을 선물했다. 그리고 쉬는 날이면 자연 속을 거닐거나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차명상, 마사지, 미술 전시, 표현 예술 치료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누리고 행복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글로 기록하며 나누고 싶다.
'내가 힘들 때조차 나에게 친절할 수 있기를'
이 자애 명상의 문구가 나의 삶에,
그리고 당신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라며.